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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해외 역사.문화탐방 참가자 소감문
아르미청소년 대구.경북지부 2010-12-31 추천 14 댓글 0 조회 2966


청소년 해외역사.문화탐방 소감문
소속 : 1조 팀명 : 월아
한국교원대학교 생물교육과 곽현영


8월 11일.
한국은 태풍주의보가 발령되어 있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Homeplus에서 집결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또 나는 상념에 잠겼다. 실크로드. 현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불경을 가지러 갔던, 온갖 요괴가 출몰하던 그 길이며, 바리가 약수를 구하러 갔던 서천서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여자의 몸으로 무쇠갓을 쓰고, 무쇠 신발을 신고 극심한 고생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간 바로 그 길을 내가 답사하러 간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어떤 감로수를 얻을 수 있을까.

7시 40분에 출발하여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만디 성질이 벌써부터 눈에 보인다. 입국카드를 작성하는 승무원들의 손길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한 사람당 5분은 걸리는 것 같았다.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면 승무원보다 국방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다. 위험지역을 분류되어서 그런지 검색이 까다롭고 경계가 삼엄했다. 공항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찍은 사진마저 삭제하라고 한다. 공항 밖은 이미 짙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차고 건조한 공기가 여긴 한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다 가버렸으니,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부터 시작이다. 말로만 듣던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 자연 화장실, 외국에서 보는 한국기업..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된다.

8월 12일
다음날 아침, 언니들과 함께 같이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이미 어제 받은 단체티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이제 중국 음식, 시작이구나. 뷔페식이었는데, 한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았는데 접시는 깨끗하다. 퍽퍽한 카스테라, 먼지 묻은 사과 하나.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나를 당황시켰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해도 되겠지. 오늘 아침은 여기까지로 해야 겠다.
버스를 타고 처음 간 광관지는 신강위구르자치구의 박물관. 이곳은 박물관 안에도 검색대가 있었다. 물통을 모두 모아 사물함에 넣고 검색대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중앙에는 우루무치를 포함한 실크로드 지역의 지도가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의 옛날 그릇, 무기, 장식품들. 한국과도 교류가 있었던 터라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국의 유물들은 색이 더 투박했고 그릇의 경우 주둥이 부분이 배부분보다 넓었다. 그 박물관에는 미라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국의 박물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박물관에서 미라를 보려면 따라 미라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가거나 사진으로 접하는 것이 보통인데, 일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풍채가 아주 좋은 장군 미라, 165cm로 장신의 여인 미라, 장수하신 할머니 미라까지. 특히 할머니 미라는 피부의 잡티까지 보일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실제로 본 미라는 영화에서 본 것만큼 소름이 끼친다던가 무섭기 보다는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실험실에서 보던 해골과 비슷해서 그런가.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천산 천지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중국인들은 음식을 한 봉지씩 싸가지고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위는 아마 큰 천지가 있고 주변에는 잔디와 나무로, 예쁜 공원이 조성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케이블카는 스키장의 리프트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이면 전체를 다 막아 놓고, 유리를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도록 설치를 했을 텐데, 이곳의 케이블카는 탈 때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옆 칸에 대기하고 있다가 뛰어서 올라야 했고, 옆에 달린 문도 탑승자가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었다. 오래되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부식 또한 많이 되어 있어 불안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본 경치는, 이런 불안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혼자보기 아깝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보다. 진짜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이걸 엄마도 봐야 하는데, 꼭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뚝우뚝 솟은 산이 녹음으로 뒤덮여 있고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호수, 저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구불구불한 도로. 산꼭대기에 하얗게 눈만 덮여 있었더라면 알프스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올라가다 보면 산 곳곳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계속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워낙 건조하다보니 이런 식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식물이 자라지 못할 것 같았다. 이곳이 사막이 된다면 정말 볼품없어질 것이다. 이 와중에 나는 발 아래로 보이는 식물을 보고 채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속한 그룹이 나를 만든다더니, 이미 나는 과에 속했나보다. 이번 일정을 마치고 나면 ‘실크로드 역사,문화 탐방단’이라는 새로운 그룹이 또 나를 만들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이번에는 전동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천지까지는 또 얼마간의 거리가 남았다보다. 커다란 호수에,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 생각보다 스케일이 너무 커서 한눈에 담기 어려웠다. 다들 천지의 장관에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이 골짜기를 메운 채 넘실거리고 있고 주변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 바그다봉이 구름을 부채삼아 얼굴을 가리고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호수에는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배들이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중국의 전통 왕궁같은 붉은 빛의 배도 있었는데, 우리가 탄 배는 유람선하면 딱 생각나는 평범한 하얀 색 배였다. 천지의 물을 괌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초록 빛깔이었다. 초록색을 넘어서 에너지음료와 색이 너무 비슷해서 색소를 푼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는데 덕분에 만년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사실 만년설을 만져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배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나에게 전혀 가깝지 않았다. 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녹아 300m 고도가 더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생각이 너무 짧았다. 만져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가려면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전문 장비를 착용하고 등산을 해야 할 텐데. 호수 주위에는 말을 탄 카자흐족들이 보이고 멀리 산기슭에 집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이런 산골 깊은 곳에 신비롭게 숨어 있는 천지. 누가 이런 곳에 호수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예부터 이 천지는 부족들에게 신성시되었고 그에 따라 여러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기원전 1000년경, 중국 주나라의 목천자는 서방정벌에 나서다 이 신령한 천지에 오르게 되는데, 신비스런 천지를 넋을 잃고 쳐다보던 그는 호수 한가운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유유히 수영을 즐기던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천자는 이 여인에게 술잔을 돌리며 연회를 베풀어 주었고, 여인은 노래로 감사를 표했다.
‘흰 구름은 하늘에 있고 산등성이는 스스로 나와 있네
길을 멀고 산천은 그 속에 있네
바라건대 그대 죽지 말고 다시 돌아와주기를’
노래를 마친 여인은 홀연히 사라졌는데, 이 여인이 바로 서쪽 나라를 다스린다는 전설의 서왕모였다고 한다. 서왕모는 원래 반인반수의 흉측한 모습을 재앙과 죽음을 관장하며 동시에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죽음보다는 생명의 여신으로 중국인들에게 숭배되었다고 한다. 가이드께서 해주신 또 다른 이야기는 이러하다. 천지 근처에 종류가 다른 딱 한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연회가 초대받지 못한 서왕모가 화가 나서 하늘에서 머리에 꼽고 있던 자신의 비녀를 던졌다고 한다. 그 비녀가 땅에 꽂힌 것이 바로 이 나무로 변한 것이다. 사실 요즘은 이런 전설보다는 천지 호수에 산다는 괴물이 먼저 떠오른다. 반인반수였다는 서왕모. 목천자가 본 모습은 인간부분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천지의 괴물’ 사진은 서왕모의 나머지 다른 모습이 아닐까.
유람선을 다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는 길에 양꼬치를 먹었다. 시시케밥. 특유의 향신료가 위에 뿌려져 있어서 고유의 양고기 맛을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양고기를 먹는 것인지, 향신료를 먹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금, 양꼬치 구이가 먹고 싶다.
한식당에서 향신료 넣은 된장국과 얇은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기차역으로 갔다. 유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야간기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주요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여기는 위험지역이라 표를 세 번이나 검사한다고 했다. 상인, 관광객, 현지인까지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가이드께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소리쳤고, 모두 긴장해서 줄줄이 따라갔다. 여기는 질서라는 단어가 없어 보였다. 먼저 들이미는 사람이 일번이었고 그 줄이 순서가 되어 버렸다. 기차역 안에서도 검색대가 있었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공항보다 검색이 심한 거 같다. 손에 들고 있던 콜라까지 검색대 위에 올려놓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대합실도 크게 마련되어 있는 것이 서울역에 버금가는 듯했다. 기차 안에서는 화장실 가기도 어렵고 나중에 물도 끊긴다고 해서 먼저 역에 있는 화장실에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화장실 앞에서 단체로 캐리어를 펴놓고 있는 상황.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괴기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여러 명이 함께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야간 기차가 내 앞에 섰다. 무궁화호의 통로보다 좁은 통로가 오른쪽에 하나 있었고 왼쪽에 방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차칸 정도의 크기에 침대가 위아래, 양옆으로 네 개가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호텔을 숙박하고 나서야 느낀 것인데, 야간기차의 침대는 정말 푹신한 것이었다. 4성급 호텔이었는데, 침대는 야간기차의 것이 훨씬 좋았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혜초 스님은 이 이 어둠을 헤치고 걸어 나가셨을까. 아니면 별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을까. 이런 감상에 빠지기에 나는 너무 젊은 것 같다.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팀원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차소리에 금세 잠들었다. 혜초 스님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8월 13일
아침에 일어나니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역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차를 타고 돈황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잠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이 곳을 휴게소라고 부를 수 있는 지 의문스럽다. 화장실 하나에 집 한 채에 그 앞에서 과일을 파는 상인 가족. 휴게소라기보다는 화장실을 쓰려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과일을 팔기 위해 그 옆에 집을 짓고 사는 것 같았다. 자연식 화장실은, 사진으로 본 것과는 조금 달랐다. 사진에서는 나무로 칸이 나눠져 있고 남녀 구분없이 정면을 보고 일을 볼 수 있는 구조물이었는데, 실제로는 비록 발이었지만, 남녀구분이 되어 있었고 모서리를 따라 밑에 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위에 기역자 모양으로 칸이 있었다. 칸이 매우 짧아 가려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칸막이의 기능은 단순히 몇 인용인지 ‘구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화장실을 구경하고 나와 하미과라는 과일을 나눠 먹었다. 황금빛으로 띠어 진상품으로 올라갔다는 하미과. 메론과 비슷한 크기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달다. 위구르 지역의 토양과 더운 날씨, 건조가 아니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도 딱 20일만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하미과는 이천년 전부터 먹던 것으로 원초의 <장춘진인서유기>에 보면 “하미과는 마치 베개와 모양이 비슷하나 그 향과 맛은 중국에는 없던 것이다.”라며 평했다고 한다. 화장실 옆에는 색이 다 일어나 못 쓰는 당구대가 있었다. 다들 당구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어딜가나 당구장은 쉽게 볼 수 있고 훨씬 좋은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질이 좋지 않은 공에, 다 일어난 당구코트, 부서진 당구채로 중국에서는 이렇게 즐겁게 놀 수 있다니,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데, 우리나라에 있는 물건이 다른 나라에 있으면 어찌나 신기하고 반가운지. 이것도 해외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다시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돈황 시내로 들어섰다. 돈황은 실크로드의 입구로서 중개무역의 요지였다. 중국 학자들은 돈황을 ‘인후’에 비유하는데, 입에서 식도와 기도로 통하는 목구멍과 같다는 의미라고 한다. 동방 문물이 이곳을 지나면 몇 갈래의 길로 갈라져서 빠져나가고, 반대로 서역 문물도 이곳을 지나서야 동방에 전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물자를 교류하던, 경제적으로 대단히 풍요로운 곳이었다. 돈황을 동서 문명의 보물고라든지, 미술관, 사막의 화랑이라는 별명은 이런 특성에서 붙은 별명이라 할 수 있다.
돈황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영화 <신용문객잔>의 촬영지인 돈황고성이었다. 성벽에, 대포에, 시장 거리까지 너무나 잘 꾸며져 있어서 길 사이로 금방이라도 그 시대의 군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땅이 넓으니 성도 크게 세우고 거리도 넓게 만드니, 보기에도 시원시원했다. 중국풍과 서역풍이 섞여 있었고, 주변의 황량한 모래와 어울려 모르고 가면 세트장인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건물밖에 설치된 수도관만 잘 가려졌더라면 말이다. 위로 올라가보니, 사막의 넓게 펼쳐진 초원이 한 눈에 보이는 단이 있었다. 이곳을 보면서 왕은 나랏사람들을 살피고 정세를 논했을 것이다. 옆에는 말을 타고 사진을 찍는데 10위엔이라며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용히 감상에 빠져들고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다 저절로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가이드께 들은 이야기로 돈황고성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 돈황 세트장은 맨 처음 일본인들이 <돈황>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중국 정부에 팔려고 했는데 중국 정부가 사려하지 않자 일본측 영화관계자는 이 성을 불태우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좋다, 불태워라. 하지만 불에 태워서 생기는 재와 연기 모두 너희 나라로 가져가라” 고 했고 일본 영화관계자들은 할 수 없이 성을 그래도 둔 채 떠났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떠오른다. 악독한 샤일록에게 판사는 ‘심장 일 파운드를 떼어가되, 한 방울의 피와 살에 상처를 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다. 둘 다 같은 논리를 품고 있지만,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찬사를 보냈었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중국 정부가 억측 논리를 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돈황고성이 중국에는 계륵같은 것이었을까. 현재 유명 관광지로 상업화되어 지속적인 수입을 얻고 있는데, 자기가 갖기 싫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돈황고성을 떠나 또 버스를 탔다. 여행시간의 절반을 이동하는데 쓰는 것 같아 아쉬웠다. 하루에 서울에서 부산 왕복을 두세번씩 하는 것 같다. 거기다 포장만 되어 있지, 전혀 포장도로 구실을 못하는 길로 다니다 보니, 피로가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수화물 규격을 지키지 않고 과도하게 짐을 실고 다니는 트럭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운전기사라도 이런 장거리를 배송하는데 최대한 적게 이동해서 물건을 옮기고 싶었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에 비해 중국은 너무 넓어 보수하는데 나랏돈을 쓰기보다는 개발하는데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내에 도착해서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이 호사를 중국에까지 와서 받게 되다니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발마사지를 하는 동안 마사지하는 분과 대화를 했었는데 그분들의 나이가 우리와 비슷했다. 제일 어리신 분은 18살이라고 했다. 여기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중국의 한자녀 정책으로 호적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생신고가 안되면 중학교까지만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졸업 후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너무 밝고 예쁜 아이들인데, 같은 학생인데, 마사지를 받는 내내 너무 미안했다. 내가 부자였다면, 좀 더 영향력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데리고 가서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최고의 결혼 상대가 호적이 있는 남자라고 한다. 호적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호적에 등록되면 자신도 호적이 생긴다고 한다. 이 정책으로 인해 신랑, 신붓감을 찾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 안타깝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 중에는 분명히 계발하면 빛을 바랄 인재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마사지숍을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어둑해졌다. 바로 야시장으로 떠났다. 조명이 곳곳에 달려있었고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어 부산의 자갈치 시장의 입구가 생각났다. 시장의 끝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유롭게 구경을 했다. 아기자기한 공예품들, 다양한 종류의 차, 비단까지 깔끔하게 진열해 놓고 뽐내고 있었다. 야시장에서는 수레가 물품을 진열해놓고 옆에서 직접 공예품을 만드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신기했다. 야시장의 주골목을 약간만 벗어나면 구경하는 사람이 확 줄어버린다. 한 상점에 들어갔는데 오카리나와 비슷한 물건을 진열되어 있었다. 상점의 아저씨가 시범까지 선보이시면서 해보라고 권하셨는데, 잘 되지 않았다. 한 가닥 배워보고 가겠다고 열심히 불었는데 소리조차 나지 않아서 답답했다. 야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고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시장에서 공예품을 사려는 현지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진짜 주민들은 시장 입구의 양꼬지 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뿐인 것 아쉬웠다. 진짜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같은 곳이 있기는 할까?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오늘의 석식은 낙타발 요리였다. 팝콘이랑 같이 나온 것이 특이했는데, 음식 모양에서 낙타발이 연상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거리낌은 없었다. 비계가 많은 족발 맛이었다. 쫄깃쫄깃한 것을 넘어 물컹물컹했다. 그래서 팝콘이 같이 나오는 것일까.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8월 14일
어제 일정이 바뀌어 못갔던 명사산을 오늘 아침에 가기로 했다. 명사산은 이름 그대로 모래가 우는 산이라는 뜻인데 강풍에 무너져 내리는 모래 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린다고 한다. 사실 이곳도 보통 사막인데, 산이라고 칭한 이유는 바람이 잘 불지 않아 모래의 이동이 없기 때문이다. 모래가 흩날리지 않으니 산처럼 한자리에서 계속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 8시쯤 도착하여 성문을 통과하니 유려한 곡선의 사구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수많은 사구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라 하는데, 크고 유려한 곡선으로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혜초 스님, 원효 스님이 몇 천년 전 걸었던 이 곳. 개미만큼 작은 사람들이 사구를 정복하려 열심히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실제로 본 낙타는 정말 컸다. 이야기로 듣기로는 냄새가 너무 심해 참기 힘들다고 하던데 30cm정도까지 가까이 가서야 특유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그리 심하지도 않았다. 길다란 속눈썹에, 늘씬한 다리, V라인을 그리는 얼굴형, 커다란 눈망울. 사람으로 치면 위구르족처럼 미인일 것이다. 낙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낙타혹은 분명 그림에서는 과장이 있었던 것 같다. 몸에 비해 너무 작았고 시든 꽃마냥 축 늘어져 연약해 보였다. 낙타를 타면 혹에 기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댔다가는 바로 떨어질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낙타행렬이 보였다. 낙타를 모시는 아저씨는 뜨거운 사막의 모래를 밟으며 걷고 계시는데 나는 낙타에 타고 감상에 젖으니 실크로드를 따라 문물을 전하는 사신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나의 사구를 넘으면 또 다른 쪽에 사구가 보였다.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른 채 발걸음을 옮겼을 이들. 두려움과 막막함, 하지만 해내야 한다는 의지를 가졌을 이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낙타에서 내려 정자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월아천까지는 걸어간다고 했다. 사실 낙타 체험을 재밌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막을 직접 걸어보면서 수행하는 느낌도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월아천까지는 걸어갈 수 있겠다 싶어 기대했었다. 하지만, 너무 예쁘게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모래 대신 딱딱하고 편한 포장길을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월아천은 입장권에 그려져 있는 그림 그대로였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2천여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은 오아시스의 연못. 이곳을 발견했을 때 여행객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마를 새 없이 사막의 나그네들에게 마실 물을 대 주는 생명수였을 것이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월아천으로 가는 200m 남짓한 거리는 사막이었다. 발이 쑥쑥 빠지는 것이 물속을 걷는 것만큼이나 체력 소모가 컸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잘고 부드러운 모래를 보지 못했다. 따끔거리고 울퉁불퉁한 모래 속에 몸을 묻는 모래찜질에 대해 평소 격하게 거부했던 나인데 이곳에서라면 모래찜질이 가능할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본 월아천은 솔직히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월아천 옆에 위치한 궁궐에 들어갔는데 피렌체의 계단처럼 나선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3층에서 월아천을 내려다 보았다. 지금은 정수가 필요한 물이지만 그 옛날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여행객들을 위에서 바라보며 이 궁궐의 주인은 이곳을 얼마나 뿌듯하게 생각했을지 짐작이 갔다.
사막을 직접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래썰매. 경사가 높은 사구를 올라가 위에 마련되어 있는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활동이었다. 돈황 사람들은 단옷날 명사산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면 한 해의 액운을 떨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사막 중턱을 헉헉 대며 오르고 탁탁 튀기는 모래를 맞으며 내려왔는데 그 짧은 거리의 썰매를 타려고 내가 이 험한 길을 올랐나 싶은 게 약이 올랐다. 모래가 너무 부드러워 발을 짚을 때마다 갯벌에 발이 빠지는 듯이 다리를 감싸쥐었다. 설피가 너무 절실히 생각났다. 사구의 중간 정도밖에 안되는 높이를 올라갔는데도 이렇게 힘이 든 것을, 어떻게 현장법사는 이 사막을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길을 떠났던 현장법사. 역사에 길이 남을 스님은 분명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절벽에 저토록 많은 굴을 파다니, 실제로 보기 전에는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보니 전혀 신기한 건축법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흙벽에다 굴을 파서 집을 짓는 것이 너무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 건축법으로 볼 때 이곳의 절벽은 최적화된 장소였다. 이 곳은 돌이라기보다는 단단한 흙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손으로 긁어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막고굴 중심에는 96굴의 7층 누각이 있다. 이곳에는 가장 큰 미륵불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20여 개의 굴을 살펴봤는데 벽화에서 고구려를 비롯한 한반도에서 온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쓴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고구려나 신라에서 유행하던 모자였다고 한다. 외국에서 본 한국인은 모두 다 가족이고 이웃사촌이라는데 벽화에 있는 관리의 모습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외국에 간직된 한국 관련 기록이나 유물들은 당대의 외국 국가 간의 관계와 대외적 위상들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우리에게 기록이 없어 알아내지 못했던 역사를 외국의 유물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점, 다른 나라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나음과 모자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디를 가나 우리와 관련된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막고굴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신라의 석굴암이 생각났다. 석굴암이 만들어질 때인 700년대 중반은 이 곳 돈황의 석굴이 한창 유행했을 때였다고 한다. 당연히 그 소문이 동방의 신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김대성이 여기까지 기술자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석굴 사원의 구조를 연구한 뒤, 굴을 파기 어려운 토함산의 지질에 맞춰 돌을 쌓아 인공석굴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석굴암인 것이다. 돈황의 석굴을 보고 지은 것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잘 변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문화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앞서 말했던 우리의 나음과 모자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황 시내로 들어가는 중에 가이드께서 창밖을 내다보라고 하셨다. 사막하면 빠뜨릴 수 없는 신기한 경험, 바로 신기루였다. 대상들이 그것을 보고 가다 목말라 죽는다는 그 신기루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득한 지평선 옆으로 호수나 바다가 틀림없이 있을 것만 같다. 누가 그것을 보고 물이 없다고 하겠는가. 모두들 신기해서 고개를 내밀어 본다. 신기루도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의 어느 부분에서 계속 보이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반대편에 있는 오아시스가 태양빛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것이 신기루의 실체 아닌가. 그래도 신기루는 신기했다. 손오공은 신기루를 보고 가서는 안된다 하고 저팔계는 가자고 주장하는 가운데 삼장은 인내심 가득한 말투로 속는 셈치고 가보자며 오공을 설득했을 것이다. 열심히 오아시스를 향해 걸었지만 아무것도 없자 이것은 사막에 사는 요괴의 짓이 틀림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제까지는 관광지에 있는 박물관에 주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작은 시립박물관인 것 같았다. 전시물이야 그 전에 견학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흥미가 떨어졌는데 박물관의 분위기가 특이했다. 전시관마다 직원이 한두명씩은 꼭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려 한다든가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 닫을 때까지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치곤 애향심이 부족한 듯했다. 중국 상인들은 손님에게도 화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중국인의 특성인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이건 며칠 동안 돌아본 박물관을 통틀어서 발견한 것인데 박물관에 항상 기념품숍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도 기념품숍이 있긴 하지만 작인 시립이나 마을 박물관에서는 보기 드물다. 이곳은 하나의 전시관만한 크기의 기념품숍이 있었고 그곳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따로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전용차량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서점이 눈에 띠었다. 불현 듯 한국책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은 한국과의 교류가 적은 곳이라 한식당이나 한국인을 위한 시설을 보기 힘들다는 소리를 이미 많이 들은 터라 순수 한국어로 된 책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행회화나 중한사전 따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혹시나하고 들어갔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하지만, 들어간 것은 잘했다고 생각된다. 중국서점도 한국서점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중국 입시 시험을 준비하는 문제집이 많이 널려있었고, 잘 팔리지 않는 사전류는 구석진 윗칸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서점 한 편에 만화책이 쌓여 있다는 것! 만화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인기인가보다.

8월 15일
버스로 이동했던 시간이 가장 길었던 날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덮인 톈산이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며 하늘의 절반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톈산은 동서 2000km로 일본 열도가 그 속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고 하니, 글자 그대로 하늘의 산맥이라 불릴만 하다. 톈산의 눈 녹은 물이 황야를 적시고 오아시스를 만들고 추원도 만들어 주위의 생물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흉노족, 돌궐족, 위구르족, 몽골족 등은 톈산을 신이 성스런 모습을 산으로 드러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닮은 톈산 산맥의 모습에 압도되어 한동안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하밀에 도착했다. 하밀은 신강자치구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인데 천산 산맥의 여러 오아시스를 연결한 동서교통이 간선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 하밀국의 왕과 왕비 및 왕족들의 무덤인 회왕릉을 견학했다. 경주의 왕릉과 같은 것이었지만 훨씬 화려했고 왕족의 무덤이라기에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회왕릉의 전체 무덤의 크기는 경주 왕릉의 두세 개를 합친 크기와 맞먹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가족, 친척끼리 모아 묫자리를 쓰는 것은 일반적인 일인데 왕족이라 해서 특별하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옛날의 화려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고 최근에 세상을 떠난 하밀 왕족의 아기 무덤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곳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지 회왕릉 속에 있는 사원은 아직까지도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성별에 따라 묘의 형태가 달랐는데 남자의 묘는 복숭아 모양이고 여자의 무덤은 5단계로 탑처럼 쌓여있다. 왕족이 이슬람교를 믿었기 때문에 이슬람 양식의 관과 건물, 사원이 있었는데 건물과 사원은 같은 이슬람풍의 건축양식이라고 하기에는 심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쪽은 원색들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이었고 다른 한쪽은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여 수수했고, 전체적으로 둥글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물은 하밀족의 모자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관 위에는 하밀의 자손들이 정성스럽게 짠 카펫을 덮어놓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묘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조상님에 대한 존경과 혼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똑같을 것이다.

8월 16일
여섯시 반에 출발하여 제일 먼저 간곳은 빠리쿤 초원이었다. 중국은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인 것 같다. 천산천지의 녹음에서부터 사막, 초원에 이르기까지 여행하는 곳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드넓은 초원은 수평선을 따라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버섯처럼 옹기종기 솟아있는 게르는 화려한 색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 마을의 족장님과 사진을 찍어오는 미션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캠프를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었다. 이곳에 묶는 사람들도 잠시 휴가를 즐기는 지역 주민이거나 게르를 체험하기 위해 묵는 관광객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이곳의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조금씩 비가 왔다. 가이드께서 이곳에 수도 없이 왔지만, 비가 오는 것은 처음 구경한다며 이 때 탐방을 온 우리는 축복을 받은 거라 말씀하셨다. 음력으로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었다. 원래는 중국의 주대 사람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우주의 현상이었는데, 후대에 전해지다 전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형적으로 구름 한 점 없고 맑은 하늘에 푸른 초원은 나중에라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견우와 직녀가 만나 흘리는 기쁨의 눈물을 맞으며 돌아다니는 경험은 특별했다.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유목민의 대표적인 가축인 ‘양’이 없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양은 너무 식성이 좋아 땅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이목 기간을 단축시켜 정부에서 양 사육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땅은 넓지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 제한 구역과 같은 의도인데 가축에 제한을 둔다니 양의 식성이 상상이 안간다. 내려가는 길에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이루어진 계곡물에 손을 담궜다. 8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아주 차가워 손이 시렸다. 이 시원한 느낌을 가지고 빨리 출발했다. 다음은 사막과 근접한 도시, 선선으로 가야 했으니까.
낙타 모양의 입구가 있는 곳. 쿠무타크 사막에 도착했다. 전동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올라가는 길에 예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호수도 있고 그 주변에서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비야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사람들은 모두 같고, 모두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소소한 모습이 사람들의 모두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막에 도착하니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사막꼭대기까지 올라가서 5분 정도 뒤에 다시 지프차를 타고 내려오는 활동이었다. 명사산에서 낙타를 타면서 옆으로 지나가는 지프차를 보았는데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특히 내려갈 때는 무중력 상태의 그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사구 꼭대기에서 사막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선선 시내가 저 멀리 보였고 뒤를 돌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많은 사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발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뜨거운 모래 열기는 달군 프라이팬에 올라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투루판으로 이동 중 덜컹덜컹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섰다. <서유기>에서 삼장 법사 일행이 불길 때문에 고초를 당하는 기괴한 무대, 화염산이었다. 현지의 위구르인은 이곳을 빨간 산이라는 의미로 ‘쿠즈로다고’라고 부른다고 한다. 최고봉은 851m로 불길이 치솟는 듯 뾰족한 이빨을 드려내고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은 건조하여 숨이 턱턱 막힐 정도지만 먼 옛날에는 비가 많이 내려 그 빗물이 흘러 산에 깊게 패인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이 흔적 때문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금방이라도 손오공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현장이 이곳을 지나 투루판으로 갈때는 엄동설한의 2월, 영하 20도 정도였다고 한다. 한 겨울의 그 산이 인간의 상상으로 펄펄 끊는 화염산이 된 것이다. 인간의 상상이 없다면 세상은 재미없고 따분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염산에 데인 뒤, 천불동으로 향했다. 천불동은 베제크리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별명이 붙었지만 실제 천불동은 수난 그 자체였다. 입구 광장에서 계단을 따라 10m 정도 내려가면 절벽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늘어선 석굴들이 나타난다. 발굴된 석굴을 약 80여 개인데, 그중 벽화가 일부라도 남아 있는 것은 40여 개뿐이라고 한다. 벽화는 모두 뜯겨져 있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불상의 벽화도 14세기 이슬람교도였던 위구르인들이 이 땅을 휩쓸었을 때 훼손되었다. 또 근세에 들어서 수많은 외국 탐험대에 의해 벽화가 뜯겨졌다고 한다. 특히 독일 탐험대는 이 천불동에서 가장 많은 벽화를 유출해갔는데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또 몇 십년 전 비(非)이슬람적인 민간신앙에 현혹된 일부 위구르족이 불상의 눈을 흉안이라 여겨 불상의 눈을 도려내고 흙으로 짓눌러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너무 오래된 그림들이라 흙을 떼어내기 위해 물로 씻으면 그림도 같이 지워지기 때문에 흙이 묻은 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10세기경 이 곳을 지배했던 위구르인들은 처음에 불교를 믿었고 자기들의 모습을 이 벽화에 그려 넣었지만 이슬람을 개종한 후손들이 그것을 파괴한 꼴이다. 당대에는 정당했던 행위도 세월이 지나면 반달리즘의 폐해로 평가받을 뿐이다. 이익에 눈이 먼 도굴꾼들과 파괴자들에게 제대로 상처 입은 ‘아름답게 장식한 집’을 뒤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해질 무렵에서야 아스타나 고분에 도착했다.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의 장소’라고 한다. 고창국 사람들도 내세를 믿었나 보다. 죽음을 생의 끝으로 보지 않고 휴식의 기간으로 인식한 것이다. ‘휴식의 장소’인데 산 사람이 들어가 휴식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세 개의 지하 묘를 구경했는데, 첫 번째로 들어간 묘는 벽에 꿩, 오리, 기러기 등의 새와 수선화와 백합 같은 꽃이 그려져 있었다. 상인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그림이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당대의 우리나라 상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묘에는 남녀가 같이 있었는데 각각의 미라가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옛날이니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아내가 생매장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동시에 죽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부부의 인연이 사후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도는 순수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창 고성을 둘러보았다. 고창국의 터전. 비행기 폭격이라도 맞은 듯 다 허물어져 있었다. 고창 고성은 고창국의 3분의 1 정도의 국민이 살았던 곳으로 규모가 무척이나 컸다. 이 성을 지을 때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벽돌에 버들가지나 마른 풀을 넣었는데 폐허가 된 이후 근처 농민들이 이 벽돌을 깨어다 비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창 고성의 유적들은 근처의 밭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장법사도 하밀에 들렀다 고창국 왕의 초청을 받고 잠시 고창국에 들르게 되었다고 한다. 설법을 마친 후 떠나려는 현장법사를 고창국 왕은 오랫동안 머물려 가르침을 펼 것을 청했으나 현장법사는 단식 투쟁까지 하며 수행길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고창국 왕은 현장법사를 너무 아꼈던 터라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수많은 말과 낙타를 선물로 주고 안내자 2명까지 부쳐주었다. 그러나 안내자 2명이 현장법사가 잠든 사이 말과 낙타, 재물을 가지고 도망쳤고 아침에 일어나 상황을 본 현장은 아무 말없이 인도로의 여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수행하는 스님의 탈세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돌아보았는데, 노을빛에 발그레지는 유적들, 영화의 행복한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주 흥했던 고창국이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비록 화려했던 지난 날은 스쳐지나갔지만 아직 이곳에는 고창국의 혼이 서려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8월 17일
원래 오늘 일정이었던 천불동,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을 어제 둘러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여유를 가지고 관광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교하국의 유적지인 교하고성. 이곳은 남북 실크로드의 교차점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꼭 거치게 되는 도시이다. 장엄한 폐허만이 남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세상이었다. <서유기>에 나오는 이상하고 기괴한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중앙에는 십여 미터의 대로가 뚫려져 있었고 허물어진 담벼락이 늘어서 있었다. 솔직히 어제의 고창고성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기술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담벼락의 벽면을 살펴보면 선명한 줄무늬를 발견할 수 있는데 탑은 벽돌로 쌓았지만 주택지는 모두 위에 서 깎아 내려가서 지층의 표시가 보인다고 한다. 그 표시가 바로 벽면의 줄무늬인 것이다. 어떻게 이 거대한 도시를 지표면부터 깎아 만들었단 말인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 곳에 사는 주민들 전체가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서 불교 사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굴들과 무지막지한 파괴자들에 의해서 남아 있는 불상은 없었지만 부처의 그 온화한 미소와 자태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기원전 1세기경 교하고성은 고창고성과 함께 투루판 지역의 중심이었다. 전한시대에는 치사국으로 불리었는데 한나라와 흉노족 사이에서 동네북으로 시련을 겪는 작은 나라였다. 이 치사국이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은 한무제가 흉노족을 이곳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나서였다. 일설에 의하면 서기 7세기 경 이곳을 방문한 현장도 여기서 1박을 했다고 하는데 그 때만해도 번성하던 곳이었다. 교하고성이 내려다보이는 단에 올라서서 번성했었을 당시를 상상해 보았다. 지금은 온통 허물어져 버리고 탑의 잔해가 뜨거운 햇빛에 녹아버린 듯 하지만 그때는 동쪽에서 떠오른 햇살이 우뚝 솟은 탑을 감싸안았을 것이다. 예불을 알리는 북과 종소리를 들으며 마을 사람들은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청아한 공기를 마시며 새벽 예불을 경건하게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터로 흩어지고 건강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번영도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택가, 시장, 절, 감옥 등의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충분히 당시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현재이곳은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인데 흙으로 만든 도시인데 지역 특성상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20~30년 이내 이곳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바람과 없어질 이곳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다음 행선지로 나아갔다.
투루판은 중국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한 분지이다.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라고 한다. 한 여름에는 기온이 보통 섭씨 50도, 지표면 온도는 80도를 넘는 살인적인 열기를 뿜어내는 투루판의 공기는 수면제라도 탄 듯 몽롱하였다. 수분을 잃은 꽃잎은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것만 같았다.
카레즈로 가는 이 길에는 돌집이 많았다. 그 사이로 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어 그늘은 넉넉하다. 병아리처럼 골목길을 오가며 높던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버스를 쳐다보았다. 가이드께서 손을 흔들어 주면 좋아한다며 많이 흔들어 주라고 하셨는데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위구르족은 남자든 여자든 짙은 눈썹이 눈 바로 위에서 올라가 있고 미간이 좁은 편이다. 쌍꺼풀이 짙고 눈이 움푹 들어가 상대적으로 볼이 튀어나올 듯이 보이고 콧날도 오똑하다. 눈동자는 대체로 까맣지만 푸른빛을 띠는 분도 보였다. 어딜가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A자 스커트를 입는데 길이는 무릎 아래 정도이며 모두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남자들은 납작한 사각 모양의 모자를 뒤짚어 쓰는데 초록색 모자는 이장님처럼 권위가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한다. 모자를 쓰는 위치에 따라 결혼 생활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뒷꼭지쪽으로 내려쓸수록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단다.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어머니가 돌궐족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돌궐족은 위구르족과 사촌지간 정도 되는 민족이라고 하니 어딘지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위구르족은 소수민족이다. 7세기 당나라에 대항하던 서돌궐이 망하자 8,9세기에 걸쳐 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토번에 대항하며 동서교역에서 재미를 보았으나 9세기 위구르족의 나라가 망하자 죽음의 사막이라고 불리는 타클라마칸 사막 쪽으로 이주하여 살게 된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총 인구는 1천 2백만 명 정도인데 몇 년 전 카슈가르에서 위구르족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로 바싹 긴장한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한족을 이주시키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관해서 언급하기는 조금 조심스럽다.
전통적인 우물이며 관개시설인 카레즈에 도착했다. 투루판은 연평균 강우량이 20mm이내이므로 사람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증발량이 강우량의 180배라 하니 지상에서 물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이 극한의 자연에서 투루판 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풍요로운 곳’이라는 뜻의 투루판을 만들 수 있었다. 카레즈를 만들기 위해 톈산 산맥의 눈이 녹아 지하로 흘러내린 수많은 물줄기 위에 우물을 팠다. 물줄기가 어디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물을 깊게 팠다가 물줄기를 찾지 못하면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처음부터 파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지면 경사지므로 우물을 3배정도는 더 깊게 파야 한다는데 이 수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시간이 들었단 말인가. 투루판 전체에 이런 카레즈가 1천 개나 있다고 하니 대단한 숫자이다. 이 물은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깊이 10여 미터에 폭은 1미터 남짓한 좁은 지하 터널에는 손발이 시릴 정도의 찬물이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었다. 카레즈 수로 곳곳에 카레즈를 만들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들이 있어서 눈길이 끌었는데 수천년이 지난 지금 “오빠”를 외치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손짓하는 위구르족의 모습으로 대체되어 버려 아쉬움이 남았다.
소공탑은 이슬람 사원인데 미나레트가 하나뿐이라 독특했다.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팔려 안으로 들어가면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을 모르고 그냥 나와 버렸다. 팀의 일부만이 가까이 가서 성을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사진으로만 사원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니 정말 안타깝고 후회스럽다.
카레즈가 극한의 자연환경의 도전을 이겨낸 문명의 예라면 2천여 년 동안 가꾸어 온 포도는 그런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포도 농가를 방문하는 곳은 관광의 필수 코스라고 한다. 좁지만 활짝 열린 문에 들어서니 앞마당에 평상이 펼쳐져 있었다. 평상에 둘러앉자 주인은 하미과와 수박, 포도를 대접해 주셨다. 위구르족은 손님이 찾아오면 춤을 추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라고 했다. 붉은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여쁜 여인이 섬세한 손동작을 보이며 포도 종류만 해도 200종이 넘는데 그것을 말리는 방법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고 했다. 포도를 따지 않고 물을 끊어 말리는 방법은 특급품, 자연건조장에 옮겨 말리는 것이 일등급이라고 한다. 평소에 건포도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곳의 건포도는 분명 수분이 빠진 것이었는데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맛있었다.
호텔로 들어가서 양고기 통바베큐를 특식으로 먹기로 했다. 돼지 바베큐처럼 꼬챙이에 꽂아서 나올 줄 알았는데 머리부터 발까지 양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태 머리에 빨간 리본까지 맨 채로 식당에 들어왔다. 주방장이 큰 칼로 양의 등을 치니 등뼈가 칼에 찍혀 나갔다. 이런 모습까지 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양고기는 기름이 쏙 바쪄 껍질은 바삭했고 고기는 부드러웠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아 신기했다. 양고기 통구이를 하는 날에는 양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는 의식을 행한다고 하는데 위구르족 무희 두 분이 전통 춤을 보여주셨다. 우리 팀도 참여하여 위구르족의 전통춤도 배워보고 원을 그리며 돌아 양의 혼을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석식 후 당나귀 마차를 타고 까르푸로 향했다. 당나귀 차는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호텔 입구까지만 타고 가려니 했는데 시내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당나귀는 자기 앞마당인 양 신호도 지키지 않고 도로를 휘저으며 달렸다. 당나귀한테 이런 말을 쓰는 것도 웃기지만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고 자동차, 사람 가릴 것 없이 먼저 나아갔다. 이상한 건 그런 당나귀 마차를 본 중국인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앞으로 나오면 자동차가 알아서 옆을 비켜 지나갔고 경찰까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아른거리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보는 야경은 정말 꿈만 같았다.
까르푸는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언어장벽에 맞서 이미 정한 물품을 최대한 빨리 사오는 것이 미션이었는데 까르푸가 생각보다 좁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물품들이라 미션은 5분도 안되서 끝나버렸다. 미션을 한다고 까르푸 내를 뛰어다녔던 우리가 신기했는지 어느새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품위 있는 한국인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닌가 미안해졌다. 해외에서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한국의 이미지와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다.

8월 18일
실크로드 답사의 마지막 날이다. 공항을 이용하기 위해 우루무치 지역으로 가는 중에 풍력 발전소에 들렸다. 이렇게 많은 풍력 발전기는 처음 보았다. 디자인은 우리나라의 풍력 발전기와 거의 똑같았는데 규모면에서는 차원이 달랐다. 풍력발전소는 바람이 지속적으로 많이 불면서도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에 양호한 지형을 갖춘 곳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지역이라 풍력 발전소를 많이 설치하기는 어렵다. 이곳은 평편한 땅에 강풍으로 유명해서 대량으로 풍력 발전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가로줄, 세로줄, 대각선까지 딱딱 맞춰 늠름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니 군기가 바짝 든 군부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풍력 발전은 화석대체 효과로 가장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설치 후에도 토지를 농사나 목축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이다. 화석도 많고 석유도 나오는데 대체에너지까지 차지하다니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다.
남산목장으로 올라갔다. 바리쿤 초원과도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바리쿤 초원은 평지에 넓게 펼쳐졌다고 하면 남산목장은 산 중턱에 언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멋진 갈색빛 말을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면 동화 <빨간 망토 소녀>가 할머니집으로 갈 때 지났던 숲길이 나왔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곳으로 들어가보고 싶지만 길을 잃어 다시는 못나올 거 같은 생각도 들어 뒤돌아섰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말을 타는 것이라는 이 마을 아이들이 말을 타는 기술은 정말 대단했다. 아슬아슬하게 말 사이를 지나다니고 속도를 제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나도 이곳에서 한 달 정도만 살면 저렇게 탈 수 있겠지?’ 부러운 마음이 샘솟았다.
남산목장을 내려오면서 근처에 카자흐족이 살고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넓은 들판에 딱 하나의 게르. 자식들을 다 키워 도시로 보내고 홀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계신다고 했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봐서 그런지 우리가 마냥 좋으신가 보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말에 흔쾌히 허락해 주신다. 비록 햇빛에 얼굴이 타서 실제 나이보다는 더 많이 보이지만 할아버지의 미소는 자연을 벗삼아 살았던 옛선인들의 것과 같아 보였다.
시내로 들어서 어느 공원에 들어갔다. 암벽에 해가 비치면 붉게 보인다는 홍산에 지어진 공원, 홍산공원이었다. 문화,역사 탐방인데 왜 공원이 일정에 들어갔는지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었는데 청대의 영웅인 임칙서의 돌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공원 내에 누각과 정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동물원이나 찻집도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공원을 이용하면서 역사 학습도 가능하니 일석이조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박물관, 전시관을 따로 나누지 말고 공원처럼 조성해 문화재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전통시장인 바자르를 향해갔다. 야시장을 본 뒤 살짝 아쉬움을 안고 있어서 바자르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일단 까르푸에 가서 이차 미션을 하였다. 이번에는 한국기업 제품을 10위엔 안으로 사오기는 것. 전에 갔던 까르푸도 그러하고 이 곳의 까르푸도 일층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는 주차장까지 포함해 3,4층 정도 되는 건물이 일반적인데 땅이 넓어서인지 대형마트가 우리나라만큼 활성화가 안되어 있어서 그런지 한 층밖에 없어서 구경하는 시간이 짧았다. 하지만 식품 코너와 의류 코너가 따로 나눠져 있고 카트기를 미는 사람들의 모습은 친숙하였다. 까르푸와 바자르 시장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자르 시장 안에 까르푸 매장이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바자르 시장은 여기 말고도 두군데가 더 있다고 하는데 동서남북으로 나눠 장이 서있었다. 우리는 동쪽으로 갔는데 야시장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다양한 액세서리나 비단, 차 등은 야시장과 겹쳤지만 말안장이라든가 위구르족 전통의상이 새로웠다. 또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그곳에 많았는데 재래시장이라기에는 유명 브랜드의 상점이 군데군데 있어서 재래시장과 시내의 분위기가 조합된 거 느낌이었다.
10시 15분, 다시 우루무치 공항으로 이동했다. 여행을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많이 피곤했는지 비행기에서는 정신없이 잠을 잤던 것 같다.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일어나 보니 이미 한국이었다.

해외여행을 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기 전에 긴장도 많이 했고 쓸데없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게 다 설렘의 다른 표현인 거 같아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나름대로 행선지에 대해 조사하려고 도서관도 많이 가고 중국어도 공부했었는데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설명을 듣다가도 아는 것이 나오면 괜히 반갑고 더 열심히 듣게 되는 것처럼 준비를 더 열심히 했다면 여행 동안 방문했던 곳에서 더 깊이 있는 감동을 받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렇게 중국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중국을 바라볼 수 있으며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쁘다.
중국이라는 나라, 가까운 이웃나라라는 말은 계속 들었지만 내게는 수만 리 떨어져 있는 먼 나라일 뿐이었다. 중국하면 막연하게 큰 황야와 야경으로 빛나는 베이징 거리만 머릿속에 떠올랐었는데 직접 방문한 중국은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였다. 중국 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이번 여행에서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우리말을 들으려는 태도에서 중국인들은 국제화 시민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중국보다 발전은 조금 앞섰지만 시민의식이 아직까지는 아쉬운, 한국인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걱정된 것은 나 또한 여행 중에 국제 망신을 시킨 것은 아닌지 하나라도 한국인 이미지에 해가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에 갈 때는 한국 문화도 알릴 수 있도록 전통 공예품을 준비해 가거나 한국 무용을 배워서 선보였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같이 간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개개인마다 얼마나 풍성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열심히 삶에 빠져들어 살고 있는 지 엿볼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바쁘다고 말하면서 투정을 부린 것은 아주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이번 방학을 자원봉사와 한 번의 해외여행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두 번의 해외여행과 수많은 대외활동으로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너무 주위만 둘러보고 좁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이번 탐방을 기획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시느라 항상 고민하셨던 국장님. 여행 중에도 학생들과 진정으로 대화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하시고 빡빡한 일정에도 학생들의 안전부터 생각하시는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처럼 친구처럼 편안했던 국장님께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번 탐방을 통해 국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왕서방과 혜초스님은 같은 길을 걸었을까?
동국대학교 김서현


제목이 재밌다. 일부러 저리 지은 것이 아니라 출발하기 전부터 실크로드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지금 내 머릿속을 지나치는 문구였다.

비단이 장수 왕서방과 혜초스님
흔히들 중국에‘비단이 장수 왕 서방’이라는 표현을 종종 하는 걸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중국에서는‘비단 장수가 많은가’라고 의문점을 갖기도 했었다. 지금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비단장수 얘기가 아니다. 실크로드에 관한 얘기다. 영어로‘실크로드’, 직역하면 우리 의미상‘비단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을 비단으로 만든 것도 아닌 이 길은 그 옛날 신라에서부터 로마까지 온갖 물품의 무역을 하며 생겨난 길이다. 그것도 비단이 특히 비싼 값에 거래되어 실크로드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출발하기 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만큼 실크의 품질이 좋은 것인가, 어찌하여 로마에서는 비싼 값에 팔았다지라며.
또 혜초스님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에서 실크로드를 좀 더 알린 인물이다. 물론 처음이라고 단정 지을 수 는 없겠지만, 막고굴의 17번 장경굴에서는 혜초스님의‘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었다는데...
비단을 팔러 다니다 명월 이한테 마음 뺏겼다던 왕서방과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를 왕래한 혜초스님. 과연 둘은 한번쯤 마주치지는 않았을까? (실크로드에는 수많은 성씨를 지닌 상인들 중 왕씨가 있다면 왕 서방일 테니 말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선발되고 난후 손꼽아 출국일 만을 기다리며 나름 실크로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들떠있었다. 개인적으로 학원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로 중학생들에게 사회교과목을 강의하는데 한창 실크로드에 대해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착하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곳은 내가 알던 중국이 아니었다. 한족의 언어, 한어, 즉 중국어와 위구르족의 언어, 이슬람문화의 위구르족인 만큼 아랍어가 공존하는 간판, 각종 이정표. 그리고 러시아인을 불방케 하는 하얀 피부의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이들과, TV에서만 보던 터키인 같은 모습들. 그때 나는 외쳤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고. 내가 알던 실크로드, 내가 알던 중국은 이미 없었기에.

향비가 숨 쉬던 곳, 그리고 독립운동
이번 실크로드 탐방에는 나 뿐 아니라 엄마의 마음도 함께한 해외탐방이었다. 십여 년쯤, 엄마와 한 중국드라마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 엄마와 난 중국문화에 심취하여 지금의 내 대학전공까지 결정하는 큰 영향을 끼친 드라마가 있었다. ‘황제의 딸’, 건륭제와 그의 황실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특히나 건륭제의 후궁으로‘향비’라는 몸에서 향이 난다는 위구르족 공주가 등장한다. 중국드라마에서 쉽사리 볼 수없는 이슬람교 숭배와 아랍어의 사용으로 엄마와 난 말도 안 되는 중국드라마라며 한동안 신기해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이번 탐방단 선발에 관해 설명하자, 그 향비가 살던 나라가 아니냐며 밤새 엄마와 인터넷으로 위구르족에 대해 검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 탐방단은 아쉽게도 향비의 능이 있는 카슈지역엔 가지 못했지만 청나라 때에는 한 굳건한 나라로 있었을 신장위구르 자치주를 보며 가슴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신장위구르 자치주는 한때 동투르키스탄이라는 이름의 독립국가인적도 있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거듭나며 현재의 신장위구르족 자치주가 되었다 고해서 중국은 정말 많은 소수민족을 강제억압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 덧붙여 예전 당나라 양귀비의 몸에는 선천적인 암내가 왕을 유혹하는, 왕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향비도 향이 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만주족인 북경 쪽인 그나마 중국에서 해안가에 거주하는 건륭제와 세계에서 가장 해안이 먼 내륙인 신장위구르자치주, 이곳의 여인 향비. 지리적 위치상 음식 또한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섭취한 향비일텐데, 아마 향비도 암내로 건륭제의 사랑을 받은 건 아닌지 조금 상상해보기도 했다.

대륙적 모습과 만만디얼
중국은 흔히들 대륙 대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의 수에서나 땅의 면적에서나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절실히 느꼈던 것이 우루무치의 건물들이었다. 우루무치가 인구가 우리의 도시들보다 훨 많기는 하나 실크로드역사중심지라 내심 경주처럼 고도제한이나 문화재유적으로 둘러싸여있을지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고층건물들이 즐비했다. 이는 중국의 자본주의가 실크로드의 역사까지 섭렵한건이다. 또한 어느 식당에서나 중국인의 특유의 습성인 ‘만만디얼’로 무얼 시켜도 느리게 반응하여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런 답답함이 몸소 체험하는 해외탐방이 아닐까?

옛선인들의 자취 보존과 관광산업
고향이 관광도시인 경주인지라, 또 어릴 적부터 조부가 골동품상점을 운영하셔서 늘 보고만지고 놀던 것이 능, 기왓장, 토기, 불상들이라 그런지 유난히 이번 실크로드 문화탐방에 관심이 많았었다. 특히 문화재 보호에 관해 궁금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무열왕릉이 있는 동네에 살았었는데 무열왕을 뒷산, 선도산(무열 왕비인 문명왕후 설화의 산)에는 늘 도굴꾼들이 득실거렸던 걸 보아왔다. 그래서 중국은 도굴꾼의 위험은 없나, 어찌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는지 또한 관심이 많았다.
실상, 막고굴과 천불동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막고굴과 천불동이 위치한 지리가 지리적 특성상 이슬람종교도 같이 공존해 한때 종교탄압이 예상되었기도 했지만, 꼭 이슬람교가 아니라 다른 여러 이유에서 문화재 훼손이 심각한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년 전처럼, 사라져가는 점점 사진으로만 접해야 할 것만 같은 고구려 유적이나 지금의 막고굴, 천불동을 완전히 자취를 가추기 전 내 두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좌불목심불상인, 그 당시의 권력가의 영향을 받아 부처상이 여자상인 측천무후 상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점점 훼손되어 가는 모습에 가슴 아프기도 하였고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천불동의 벽화가 영국과 프랑스가 열강 세력 속에 훔쳐간 모습에서 우리 또한 열강들에게 빼앗긴 문화재가 생각이 가슴이 아팠다. 그런 모습들을 중국은 잊으려하는지 관광지로 개방한 곳이 많았는데 곳곳에 케이블 카 나 전동차 같은 상업적 특수가 너무 눈에 띄어 편하긴 했으나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자본주의에 너무 치중한 관광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그에 반해 경주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자연환경에 치중한 관광지가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역시 있는 모습 그대로가 가장 아릅답다는 걸 느꼈다.

길 위에서 배운 역사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선생님의 퀴즈가 쏟아져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중국의 4대미인 얘기와 문화대혁명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관심 있어 하던 부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중국의 4대미인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탐방한 곳은 위구르족이 거주하고 있고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며 이슬람문화도 같이 융성한곳이다. 앞서 말한 ‘향비’같은 여인네들에 대한 언급과 또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이 더욱 강성해지고 민족에 대한 억압정책에 대해 언급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포도농장을 가는 길에 한 벽화에서 한복입은 여인그림을 보았다. 그 벽화에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옷을 입고 가장 가운데에는 마오쩌둥 형상의 그림이 있었다. 과연 무엇을 뜻할까.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단일화사상정책인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위구르자치주에 한족이 증가되고 정작 살아야 하는 위구르족은 감소하며, 외국인 허용수도 제한하는 점을 분명히 밝혀주었다면 우리가 탐방하는데 다른 어떤 중국지역보다 통제가 심해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울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움이 남는다.

혜초스님은 어찌 가셨나요?
버스를 타고 11시간을 달리는것조차 고통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창을 뚫고 나의 피부를 관통해 혈관까지 데워줄 것 같은 햇살아래, 혜초스님이 생각났다. 낙타나 나귀,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이 길을 가셨을 스님. 지금 나는 가만히 의자에 몸을 맡기고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있는데도 아찔한데 그 생각을 하니 더욱 아찔해졌다. 혜초스님이 이 길을 무사히 지난건 아마도 끈질긴 인내력과 노력 때문이었겠지.
25. 마지막 대학의 종점이다. 사회로 나아가는데 너무나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혜초스님이 걸었던 길에서 잠시나마 발을 딛고 있었던 이번 탐방을 생각하며, 혜초스님의 끈질긴 인내력과 노력의 열정을 생각하며, 옛 선인도 해낸 걸 지금이라고 나라고 못해 볼쏘냐 라는 다짐으로 사회로 향할 준비를 해야겠다.

앞으로
이번 탐방은 중국이지만 중국이 아닌 곳, 그리고 세계는 넓고 둥글다는 것, 가장 중요한 인내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좋은 기회에 참여하게 되어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잊지 않으며 이 탐방의 취지인 NEO를 잊지 말며 지금을 발돋움으로 세상에 필요한, 타인에게 더욱 필요한 사람이 되길 노력해야겠다.





 


                      
금오공대 - 이한빛

1일차

우루무치에서의 첫날...모두들 서먹서먹하고...

낯선 환경에서의 첫날이 너무 어색하다...의지할곳이란 우리 팀원들 밖에 없는....그리고 진혁이형과 경원이형의 능수능란한 중국어 뿐..모든게 지금 신기하다. 그리고 밤이 너무나도 어두웠고 날씨는 싸늘했다. 첫날의 기억은 차가움!!사람없는 공허한 거리에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듯 하다. 그런데 호텔 옆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곳만이 활발한 열기를 띄는 듯 하다. 새벽 1시가량인데 키만한 삽을 들고 공사를 하시는 인부들이 정말로 놀라웠다. 숙소에 짐을 놓아두고는 바로 옆 상점을 향했다.  상점을 들어가며 모두들 입을 벌린다. 뭔가 신비함에 모두들 취해있다. 눈에 띄는 것은 라면들...라면들 참 특색있다. 뭐 딱히 모양은 다를 건 없었지만. 맥주들이 참 맛있다던데...다친 발톱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게 슬펐다...그닥 배부르지는 않았지만 라면을 골랐다. 불안함 기대 반으로...우리 숙소는 호텔인데 기대했던것보다 좋았다. 침대에 욕실까지 물도 잘나오지 그것도 2인1실이라네..후후훗...첫날밤을 호텔에서 묶는다고 생각하니 참 꿈같다. 물을 여기서는 돈내고 사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온 물로 물을 끓여 라면을 만들었다. 드디어 상점에서 사온 라면을 시식했다. 내껀 그닥 맛있지는 않았지만 먹을만 했다. 고소한 기름기 듬뿍 라면 이었고 동훈이 꺼는 내 발냄새 보다 몇 배는 강한 그런 이상한 라면 이었다. 한젓가락 하고 동훈이는 바로 버렸는데 이런 젠장. 화장실 물이 안내려간다. 물 수위가 약해서 그런지 4등분으로 나누어서 물을 쏟아 부었다. 이런 젠장. 괜히 라면 먹는다 했어....첫날 라면에 대한 기억은 안좋다.


2일차

다음날 아침...사람없이 차가웠던 밤이 었는데...다음날 되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나...아침은 많이 활기차 보였다. 아침 호텔로비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는 우리나라에서 볼수 없는 중국식 음식이 대부분 이었다. 잘못 먹었다간 화장실로 직행이기 때문에 보기에 맛있어보이는 거 몇 개와 우리나라에서도 먹는 계란이나 우유를 선택했다. 만두같이 생긴 것을 먹었는데 속은 야채로 들어있었다. 꽤나 먹을만 했다. 그닥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든든하게 먹지는 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떠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곳곳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경들...한국 차들만 보면 얼마나 좋던지...뭔가 이 동네는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못사는 것 같긴 하다. 시내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동네에는 빈민촌이 떡하니 자리잡혀있고  집이 많이 허름해보였다. 페인트칠을 아예 하지도 않은 집도 보였다. 사람들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향기에 또 한번 취한다. 진입불가 표지판에 떡하니 추가되어있는 것 중에 우마차가 있다. 아직까지는 우마차를 보지 못했다. 처음 우루무치 내에 음식점에 갔다. 원형 회전 테이블에 맥주가 기본으로 세팅되어 나왔다. 첫끼라 몹시 기대되었는데..뭔가 심상치 않다. 생선요리 곰탕같이 생긴 음식하며 만두에....근데 모두다 실망을 안겨주네...빵은 속이 없고 물고기는 밍밍한데다가 국도 느끼하고 싱겁다...흐미...다음 나온 닭고기는 조금 맛있더라 미트볼도...옥수수 콘같은 거랑 잎에 싼 찰밥은 싱겁다. 식사를 하던 중 다들 놀라던데...내가 그렇게 잘 먹는다고..양호 선생님은 배탈 안나게 조심하란다...하하하 식사중 화장실에 간다하니 양호선생님 걱정되는 눈빛을 팍팍 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념품들이 눈길을 끈다. 큰 양동이들이 이국적인 향기를 마구 뿜는다. 취해 취해..그리고 러시아 인형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계속 뭔가가 나온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차로 이동했다. 차로 이동 하는중....기차역이 보였고...우리가 저녁동안 이동할 기차라 생각하니 반가웠다. 어디 산골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물이 아름답게 흐르고 풍성한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날씨는 햇살이 따가운 정도였고 흐르는 시냇물을 보자 뛰어들고 싶었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기서 신혼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곧 천산천지(우루무치시에서 110km떨어진 지점에 있는 보 다봉의 기슭에 있으며 해발 1950m 남북의 길이 3km 동서의 폭이 약 1km 면적 5평방km 정도되는 호수이다. 천지의 주변에는 진귀한 모양을 한 산과 높이 솟은 돌오랜 수령을 가진 소나무와 떡갈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천지 밑으로 흘러가는 물은 조금 아래에서 소천지가 되는데 동서천지와 서소천지로 구분되며 천지의 만년설 산경치는 아름답다)가 다가 오고 있었다. .도착하니 산들이 아름다웠고 나무들이 우거졌으며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앞에 절같이 나무로 지은 집들이 즐비했고(대부분이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를 하는 상점이었다.) 돌로 만든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서 보니 돌은 아니었다. 화장실 안은 우리나라 대구역보다 깨끗할 정도로 신설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볼일 보는 곳은 그렇게 깨끗하지 않더라...제일 가쪽에 위치한 사람이 변을 보면 흘러 흘러 모두가 그 것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물이 부족해보이는 이 지역에서는 참으로 자연 추구적 발상이었지만 비위가 약하면 힘들 것 같다. 천상천지 입구를 지나간다. 그닥 기대는 안했다. 왜냐하면 미리 이곳의 명성을 들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후 내가 본 천상천지는 상상이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먼저 우리가 탄 것은 케이블 카를 탔다. 멀리서 본 느낌은 스키장 리프트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대차인 tucson 발견..얼마나 반갑던지..케이블카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이거 하나 탈라고 사람들이 많은가 하고 의아해 했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애한명이 눈에 띄었다. 귀엽다. 줄을 구분 지으려 설치된 울타리 사이에 앉아서 우리 한국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귀여워서 인사도 하고 손도 흔드니 잘 응해준다. 선풍기 달리 모자를 쓴 애기도 눈에 띈다.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가 신기한지 우리사진을 대놓고 찍어 버린다. 이거 원 부끄럽더라.  이제 거의 진입 했다. 바로 앞에 입장권을 확인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콧수염이 장난이 아니다. 이쁘긴 했지만 콧수염이 있으니 참으로 특이하더라. 케이블카를 봤는데 뭔가 불안하다. 내릴 때나 탈 때 뭔가 속도도 줄지 않고 안전 장치도 없고 약간의 운동신경이 필요해야 안전하게 탈수 있다. 일단 올라 타는데 성공... 타고 올라갔다. 케이블카에서의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이래서 타는가 싶더라..뭔가 마음이 탁 트이고 편안하다. 저편에 양떼들이 보인다. 높은 산을 잘도 헤쳐 간다. 중간에 호수도 있는데 에메랄드 빛이다. 풍덩 빠지고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자같은 것도 보인다. 그런데 정자치고는 규모가 크다.. 구름에 햇빛이 가려 일부분의 산에 그늘이 졌는데 아름답다..정상에 도착했고  전동차를 타고 숲을 지나 천산천지로 향했다. 전동차를 타고 가는데 현지인들이 타지의 사람들이 온것에 참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손을 흔들었는데 몇 번이나 묻힌다. 드디어 천상천지 도착!!! 아까 그 호수 보다 규모는 몇배나 더 컸고 유람선이 뜰 정도로 크다. 애매랄드 빛인건 물론이거니와 아름답다. 역시 여기 오는 이유가 있었구나..!!산 정상에 만년설이 눈에 띈다. 정상은 해발 몇m일까 궁금하다.  처음 올때는 별로 기대 안했는데 여기가 진짜 명소인 듯 하다. 여기 꼭 신혼여행와야겠다고 생각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저 만치 멀리서 신혼부부들 있더라..이런 아름다운 배경에 신혼사진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게 더운건 아니었고 바람은 시원했다. 직원들이 긴 잠바를 입을 정도로 계속있으면 추울 정도였다..뭔가 특이한 배가 온다. 황제가 쓸 정도로 화려한 배였다. 결혼식 때문에 쓰는 건가 추측해보았다. 우리는 조금 고깃배 비슷한 모양의 배를 타고 이동했다. 시원하다.....아름답다...우리 조원들과 사진 찰칵...눈에 선하다 잊을수가 없다. 그리고 배에서 하차하고 지나는 중 정해신침(정해신침은 옛날에 이 곳천지에서 살던 괴물이 온갖 행패를 부려 천지 물을 넘치게 해 우루무치를 잠기게 했다고 한다. 그때 왕비가 머리에 있던 비녀를 이곳에 꽂은 뒤로는 괴물이 난리를 치질 못했는데 그 비녀가 나중에는 나무로 변해있단다)을 발견했다. 나무가 크게 풍성했고 곳곳에 부적같은 노란 종이가 걸려있었다. 표지판에 기대어 않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는데 한국말(기대어 맍지 마십시오!!) 오타를 보니 웃기기도 했고 귀여웠다. 천산천지를 나와서 돌아오는 길에 철근이 형님이 양고기를 쏜다고 해서 걸어서 내려가는중 양고기 판매점에 갔다. 향신료에 한번 취했고 연기에 두 번 취했다. 뭔가 냄새는 적응이 안된다. 처음 맛보는 향신료는 코를 찔렀고 매혹적이었다. 양고기가 여기저기 진열되기 시작했다. 내친구 동훈이 양고기 먹고 암내난다고 입에 안맞다고 한다. 나는 맛있던데...암내는 나긴 했고 특이했지만 향신료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버렸다. 향신료는 엄청 입을 자극했다. 동훈이를 보며 안타까웠지만 실컷 먹었다. 약간 닭똥집 먹는 느낌도 들었다. 옆에 빵도 팔던데 시식해보란다. 먹어보니 고소하고 짭짤했고 피자 끄트머리 먹는 느낌이었지만 맛있었다. 여기 지역주민들의 밥같이 먹는 빵인 듯 하다. 양고기를 먹고 내려오는 길에 방목되어있는 소를 발견했다. 바로 근접하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다가가니 무서워서 도망간다. 조금만더 가까이 갔다가는 뒷발에 채일 것 같다. 이제 또 케이블카를 타려 기다렸지만 사람이 많아서 대신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여기 또 신기한게 독수리 인줄 알았는데 매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더라..푸른 창공에 매한마리가 장관이었다. 천산천지를 뒤로 한 채 우리의 점심식사는 한식당인 아랑도에서 밥을 먹게되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입에 안맞는 중국현지인 식단으로 먹다가 한식당에 가니 기쁘긴 기쁜가 보다. 가니 떡볶이에 된장국에 삼겹살에 된장에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 조애들이랑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시식했다. 난 고기굽는 종이 되었지만 그치만 배가 적은 애들이라서 마지막에 내가 많이 먹기도 했고 많이 챙겨주더라..떡볶이 맛은 거의 비슷. 된장국은 특이했다. 우리나라 된장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삼겹살은 별로 맛이 없었다. 대패 삼겹살 같았고 퍽퍽한 느낌이었다. 그닥 한식당이라고는 하지만 맛은 별로 였다. 그냥 중국음식만 먹다가 먹으니 반가웠다. 메뉴판을 보니 여러 가지 팔더라 김밥에 비빔밥에 오리고기 냉면등등...다 먹어 보고 싶었지만 재정 관계상 패스...옆길에 시장이 있었는데 가보았다. 가던길에 사람들 중국식 당구(포켓볼 비슷)을 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여기는 소매치기가 극성이란다 가방은 항상 앞으로 매라고 해서 조심히 앞으로 옮겼다. 슈퍼 앞 애들 놀이기구 타는데 재밌어 보인다. 상점주인 신기한지 우리보고 얘기를 했지만 알아들을수 없다. 계속 시시에 고맙다는 소리 밖에...그게 좋은지 미소로 답해주더라. 밥을 먹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던중 여자애들 둘이 카드 게임을 한다. 인사해도 불러도 대답없이 쳐다보지도 않고 카드를 친다. 어릴 때부터 도박의 맛에 빠진 소녀들이 안타까웠다. 기차역은 인사분란 했다. 엄청 사람이 많았다. 여기는 공항보다 더 치밀하게 수하물과 가방을 검사했고 사람이 터져 나갔다. 공항에서 검사하던 금속 탐지기 및 짐을 검사하는 통과기기도 보였다. 어떻게 빠져 들어갔고 10시 30분 차다. 그때 까지 기다리고 틈틈이 화장실에서 씻고 용변을 보았다. 서먹했던 분위기가 약간씩 깨지는 듯 했다. 모두들 나의 대화에 응대 해주며 힘들어도 미소를 띄워주는 여유까지 고마웠다. 그리고 모두들 기차를 타러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가는도중 들기에는 조금 힘에 벅차는 여자애들이나 계장님의 가방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에 감동받았다. 나도 있는 힘껏 열심히 우리조원들을 챙겼고 도와주었다. 우리 기차는 4인1실로 침실이 있는 기차역이다. 오늘 8시간을 여기 기차역에서 보낼 것이다. 기차안 통로는 엄청 좁았고 우리팀원들은 방을 못찾아서 해맸다. 참다못한 중국인이 소리치며 헤집고 들어갔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중국인들 우리나라 사람보다 성격이 더 급한것 같다. 차탈때도 느낀거지만 조금만 교통이 지체되어도 크락션을 누른다. 방안 왠지 좁았지만 그래도 지낼만 했고 깨끗했다. 이 기차가 제일 떨어지는 기차란다. 근데 좋던데 나는...쉬고 싶었지만 이 낭만을 여기서 끝낼수 없었다. 우리는 캐리어를 판으로 삼아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미리 사온 과일을 먹으며 벌칙도 정해서 옆방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놀았다....재미있었다. 카드 게임을 통해서 더욱더 서로의 허물을 벗겼고 모두들 기차역에서의 추억을 하나씩 쌓아갔다.  그리고 기차안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3일차

드디어 유원으로 도착했다. 사람들이 인사불란 하게 움직였다. 빨리 우리 팀원들은 기차에서 내리고는 식사하러 이동했다. 식사는 밑반찬이 먼가 먹음직 스럽지 않았지만 배고픔 반 기대반으로 먹었다. 만두 같은 것은 기본으로 나왔고 죽에 국에 따뜻한 우유도 기본으로 나왔다. 두부 절인게 눈에 띄였는데 그냥 먹었더니 엄청 짭더라 소금 덩어리다. 이건 작은 양으로 밥에 비벼먹거나 죽에 먹는 거란다. 식사를 마치고 짬짬이 슈퍼로 이동했다. 거기서 살려 하니 그닥 사고 싶은게 없다. 그래서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으로 라면을 하나 또 샀다. 그리고 맛있다는 음료수와 맥주도 함께 샀다. 옆에 짐구르마를 붙여놓은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한 컷을 찍었다. 이제 또 다른 여행지로 이동했다. 여러 가지 여행에 대해서 가이드인 철근이 형님이 가르쳐 주셨다. 엉덩이가 아픈 여행, 눈이 아픈 여행, 귀가 아픈 여행 등등 우린 지금 엉덩이가 아픈 여행을 한다고 한다...기대되는 것은 얼마나 시원하게 안마를 해줄까 기대되었다. 가던 중 다른 여행사에서 오신 노란 풍선 팀과 같이 합류했다. 근데 그 분들은 어르신들이 다수 였고, 조금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그분들도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시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한층 편안하게 만들게 되었다. 가던 중에 메마른 땅에 호수 같은 곳이 종종 눈에 띄었다. 신기한건 이런 메마른 땅에 어떻게 물을 모을수 있을까에 하나...그리고 이런 수풀들은 어떻게 심을 수 있을까에 두 번놀랐다. 도중에 휴게실을 들렸다. 참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WC라 적혀있는 화장실로 먼저 직행했다. 보기에도 좀 허술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화장실 안은 제일 끝에 사람이 용변을 보면 그 용변물이 떠내려가 흘러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즉 제일 끝에 사람이 만든 용변물을 다음 사람들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는 화장실에 돈을 안내서 다행이었다. 여기서 하미과란 과일을 먹었다. 멜론 같이 생겼는데 맛도 똑같더라...참 맛있다. 저 앞에 허름한 포켓볼 식 당구대가 보였다. 당구큐대는 모두 낡았고 당구판은 완전 꼬매고 구멍이 나고 난리가 아니다. 모두들 한가지씩 당구포즈를 취하며 뽐냈다. 가던 중 귀여운 꼬마아기가 보였다. 낯선 사람들을 봤는지 부끄러워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엎드려있다. 이 애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주었다. 선물은 거울이었는데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니 무척이나 부끄러워 한다. 애 부모님들은 자기 애 한테 잘해주니 좋아하시는지 애보고 인사하라고 시키신다. 갈 때 데니까 손 흔들어주며 미소로 우리를 보내주었다. 뭔가 정감 있는 동네였다. 그런 호의와 낯선 사람에게의 관심에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중간에 내려서 뭔가 고인돌 같은게 보였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 사진몇장 찍고 식사지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하러 이동했다. 아침보다는 맛있는 찬들이 올라왔다. 오리고기에 뭔가 소고기 같은 고기들....양고기란다. 배부르게 먹고 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은근히 초원이 많았다. 모두 비싸게 심어 놓은 나무란다. 황사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나? 호수도 보였다. 다음으로 영화촬영지이자 성벽(양관고성(양관고성은 서역으로 가는 길목, 양관 돈황시에서 남서쪽으로 70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 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 남도의 입구이다. 양관은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어 지금은 단지 붉은색 모래산 위에 양관의 눈과 귀의 역할을 했던 봉화대만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이나 무기들은 관광을 위해 다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관고성안에는 장건장군의 동상과 시인왕유의 석상을 볼수 있다. ))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보자마자 웅장함에 놀랐으며 각종 무기들 투석기 및...등등 이 보였다. 모두들 처음 보이는 장군(장건)상에서 사진 한장 찍고 들어갔다. 여기 온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썬크림 바르고 얼굴 피부다 가리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우리 팀원들 빼고 모든 관광객들 그냥 평상옷 차림이더라...우리 참 이상하게 보였음...그래도 무척이나 햇살이 따가웠다. 지나가다가 직원들 우리 옷차림이 특이해서 웃겼는지 몰래 웃더라..여기 내부가 생각보다 넓어서 자체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타기 전에 작은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조그만한게 귀여웠고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더라. 내리니까 철근이 형님 말타고 대기중...말타고 사진찍는데 10원 이라는데 뭔가 아까웠다. 마부는 칼 들고 우리보고 한번 타라고 계속 유혹하더라.!!여기가 2000년 넘은 봉화대라고 하던데...우리가 내린 곳 앞으로 평원이 드넓게 펼쳐져있었고 더 앞에는 우림이 펼쳐져있었다. 그리고 중국인 아저씨와 그의 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평원을 향하여 걷고 있었다. 먼가 황량함 속에 묻히는게 아니라 그 가족이 햇살보다 따스러운 먼가 사랑이 느껴졌다. 포근함이 느껴졌다. 다시 차를 타고 내려갔다. 화장실을 들렸다가 그 상점 직원들과 동훈이가 사진찍더라. 키가 작아서 동훈이가 자체 키를 맞춰 주었다. 직원들 많이 순수해보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보였다. 양관고성을 떠나고 또다른 시내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아주 발전된 도시였고 도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였다. 시골만 보다가 문명을 보니 모두들 감탄을 잊지 못한다. 저녁먹으로 갔었는데 저녁 특식으로 낙타발 요리가 나왔다. 특이하게 낙타발요리에 부수로 팝콘이 튀켜져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팝콘은 달달했고 낙타발요리는 뭔가 물렁물렁한 느낌이었다. 막창같다 해야 하나?? 암튼 특식도 맛있었고 다른 반찬들도 맛있었다. 다음으로 발맛사지를 받으러 갔었다. 모두들 발맛사지 받는다는 소리에 온갖 피로를 다 풀 심정으로 향했다. 그래도 처음 받아보는 거라 두려움반 기대반으로 맛사지사들을 맞이했다. 다행히도 우리 방에는 가이드 형이 있어서 어느 정도 말이 통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경원이형의 도움을 받아 풀어갔다. 보통 나이들이 20대 초반이었고 놀랍게도 10대도 있었다. 여기는 1달러또는 10위엔을 주고 맛사지를 받을수 있었고 팁을 주면 좋다. 그리고 잘생겼는지 물어보니 잘생겼다하던데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의 맛사지사는 20대로 경원이형이 얘 발톱 다쳤다고 해주니 조심히 맛사지를 한다. 처음에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했다. 여자애들은 뜨거워서 찬물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사지사들이 왔는데 엄청긴장됬고 떨렸다. 내가이런 극진 대접을 받아도 되나 하면서 내가 많이 긴장했는지 얘가 나보고 힘좀 풀라고 한다. 그래서 풀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된다. 나는 농담삼아 많은 말을 던졌다. 예쁘다고 칭찬도 해주고 고맙다고 하기도 하고...그러니 웃더라 거기에 순수함이 묻어있었다. 뭔가 우리나라 현실과는 다른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라나....암튼 내가 농담삼아 얘한테 세게 해달라 했는데...가만 생각해보니 얘들은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하고 힘들텐데 그리고 1달러를 줘도 다 자기 한테 들어가는게 아니라 몇% 주인한테 떼이거나 거의 받지 못한다더라...괜한짓 하지 않았나 하고 미안해 했다. 그래서 그냥 하던대로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끝나고 돈도 안받고 그냥 가길래 나는 바로 가서 1달러랑 우리 한국돈 1000원을 주었다. 딱히 큰돈은 아니었지만 한국돈이라는 메리트가 있으므로 주었는데 많이 좋아했고 고맙다고 했다. 다음으로 이동한곳이 돈황 야시장이었다. 야시장이 크게 발달했다. 여기도 소매치기가 극심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진입구에는 양고기 냄새에 취하고 더들어가니 중국 장인들의 솜씨에 취한다. 놀라울 정도로 수공예품을 잘 만들었다. 저마다 각자 사줄 선물들을 사주려 뿔뿔이 흐텨졌다. 모두들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도 잘 응해 주었다. 야시장의 기억그리고 향기는 잊혀질수가 없다. 중앙호수같은 곳에서 위험하게 사진을 찍었는데 뒤따라서 중국여자애가 따라서 나따라 사진을 찍더라. 귀여웠다. 이어서 숙소로 돌아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양고기와 맥주를 먹는 타임이 왔다. 오늘까지 술을 꾹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못참겠더라.!!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그정도 다친거는 괜찮을 거라고 주현이는 사랑니 빼고도 술 드셨다고...그 위대함에 난 지고 말았다. 에라이 모르겠다. 모두들 의사보다더 믿음직 스러운지....이때만....결국 내 귀는 팔랑귀라는 것을 증명했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향신료를 듬뿍 찍은 양고기를 우거우걱 씹어 넘겼다. 이맛이야!!흐흐흐 숙소로 보낸 동기들이 불쌍해 보였다. 말릴걸....야시장에서 밤의 야경에 취하고 맥주에 취하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서먹했지만 야시장이 우리의 장벽을 허문다. 다음으로 먼가 이상한것들이 여럿온다. 양머리를 가져오더니 뇌를 먹는다네...진짜 비위약한 나로써는 못먹을 것 같았지만 이왕 온거 언제 먹어보냐 한번 먹어봤다. 뇌 맛은 먼가 물컹했고 첫째로 계란찜 맛도 났으며 게 내장 맛도 났다. 맛은 있더라...그리고 양 눈알도 먹었는데 맛있다..!!양탕도 나왔는데...조금 느끼했지만 먹을만 했다. 동훈이 양고기 질색을 하더만 잘 먹던데....양탕에 푹빠진 일인이다. 양고기도 그때는 질식하더만 이제 적응됬는지 잘 먹네..양고기와 맥주로 배를 채운후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모두들과 재밌는 이야기도 나누고 돌아왔다.


4일차

아침일찍 나와서 출발했고 어제 못간 명사산으로 이동했다.

기는 돈황의 명물로서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래산으로 쌀알만한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다. 그리고 남북 20km, 동서가 약 40km에 이르는 모래산이고 모래결이 희고 엄청가늘다. 여름에는 기온이 매우 높아서 오후 4시 이후에 가는게 좋으며 낙타를 타고 이동한다. 모래를 밟고 산으로 올라가면, 발로 모래가 들어오고, 힘을 내 올라가도 자꾸 미끄러지는데, 한 발 나가면 반보 뒤로 밀리고, 오르는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손발을 다 쓰고야 비로소 올라 갈 수 있다.사막이라 해서 중무장을 했는데 마스크에 창이 큰 모자에 긴 팔 남방에 바지는 긴바지가 없어서 칠부바지 비슷한 트레이닝복으로 입고 갔다. 점점 이제 사람사는 것 같은 건물들과 시내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점점 사막화되어가는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조금이나마 있던 수풀들이 명사산 근처오니 거의 없더라. 사막이긴 사막이구나.!! 명사산으로 가는 길은 관광객들을 위해 잘 포장되어 있었고 관광객들이 많았다. 입장권을 끊었는데 사막에 월아천의 멋진 풍경의 사진이 있었다. 빨리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사막가기 전에 발에 버선같은 것을 끼웠다. 모래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위한 버선이었다. 들어가니 낙타들이 쉬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풍경일세..!!낙타를 태어나서 처음봤는데 참으로 순하게 생겼다. 애들은 화나면 침뱉는 다고 하던데 입으로 우물우물 씹는게 침을 모으는 듯한 모션이었다. 이제 낙타를 탔고 낙타가 일어났다. 아주 격하게 일어나는데 손을 놓치면 그대로 모래에 박힐 뻔 했다. 참으로 낙타 놈이 큰 것 같다. 나의 앞, 뒤로는 낙타의 혹이 있었다. 만지면 안된다 했으나 만져버렸다. 다행히도 낙타 반응이 없다. 낙타가 미소를 띄는데 참으로 만족스러운 그런 흐뭇한 표정과 더불어 순한 애 같은 표정이어서 귀여웠다. 타면서 느낀건데 늙은 낙타와 젊은 낙타가 차이 나는 건 늙으면 움직일 때 숨 내쉬는 소리가 크다는 것(힘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얼굴에서 힘들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좀 젊어 보이는 낙타는 미소를 띄며 여유있어 보였고 이동하는게 가뿐해 보였다. 드디어 이동한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속도는 우리 걸음걸이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그닥 속도감은 없지만 낙타를 처음 타 본다는데 의의를 둔다. 낙타발이 무슨 고무같이 신기하게 쭈그러 들었다 퍼졌다 물렁해보였다. 어제 먹었던 낙타발 요리가 생각난다. 저 발을 먹었다 생각하니 뭔가 뜨끔하다. 뜨거운 햇살과 건조한 공기를 품고 있는 사막을 거니는 느낌은 탐험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곧 집결지에 도착했고 낙타 집결지에 멈춰서 내렸다. 낙타들이 힘든지 모두들 앉아 있었고 어떤 낙타는 실신해있었다. 자신이 민망하지도 않은지 드러누워 있었다. 다가가니 침 뱉을 기색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행들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구경도 할 겸 위로 갔는데 위에는 사진 찍기 위한 장소였으며 여럿 동상들이 있었다. 손오공, 저팔계 등등 서유기와 어떤 불상 같은 것도 있었다. 진 찍으려고 하니 돈을 내란다. 그래서 얼른 미안하다 하고 내려왔다. 여기서 모이는게 아닌지 다시 낙타를 타고 밑으로 이동했다. 내 뒤에 기정이형 낙타는 애까지 달고 이동했다. 엄마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애기 낙타의 귀여움을 내세운 낙타주인의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그런데 내 낙타는 내 앞에 서현누나를 좋아하는지 계속 서현누나에게 입을 갔다 댔다. 아니면 싫어서 침뱉을 기회만 노리는 건지...참 계속 고삐를 채어도 말리지 못하겠다. 계속 말렸다가는 내가 옆 사막 저편으로 굴러 떨어질 듯 해서 가만 있었다. 그치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여기 명사산은 1년 동안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은 그렇다고 한다. 다시 월아천 근처에 있는 낙타 집결지로 도착해서 내렸다. 반가운 일행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제 월아천을 보러 간다. 월아천은 오아시스의 생김새가 초승달 모양내지는 어금니를 닮았기 때문에 월아천이라고 한다. 월아천에는 비석이있는데 비석의 의미는 중국에서 서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의 첫 번째 오아시스라는 의미이다. 천산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 돈황의 월아천이라는 오아시스를 형성하게 되는데 중국 본토쪽에서 서역으로 가자면 이곳이 비단길의 출발점이고 첫 번째 맞이하게 되는 오아시스 이기 때문에 제일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던 중에 해바라기 밭을 지나갔다. 해바라기 밭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해바라기가 해를 쳐다보지 않고 모두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의아해 했다. 입장권에서 보았던 그 사진 속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기 일보직전이다. 멀리서 보이는 월아천은 장관이었다. 아름다웠다. 사막 속에 유일한 오아시스다. 호수 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싶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월아천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인공적으로 만든건 아닌가 의아해 하기도 했다. 이런 건조하고 뜨겁고 물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사막에 모든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정화시켜줄 호수를 보니 그런 의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월아천이 눈으로 증명해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음으로 월아천 옆에 지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높았다. 내부로 들어가서 올라갔다. 회전식 계단으로 계속 올라갔다. 한층한층 마다 갤러리같은 느낌이었다. 직접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 화백의 그림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그림들이 즐비했다. 꼭대기로 가니 실망스럽게도 외부로의 길이 차단되어 그 절을 지키는 듯한 매서운 사자를 보고 갔다. 그 사자의 입에는 구슬이 있는데 그걸 만지면 행운을 준다 하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만지고 갔다. 다음으로 명사산 중턱으로 올라가서 사막 썰매를 타게 되었다. 중턱으로 올라가니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높아 보였다. 월아천도 보이고 풍경이 아름다웠다. 올라 올때는 두 손발을 모두 이용해서 올라가는데 등산보다 힘들었다. 발이 푹 파이는 모래라서 올라가기가 무척이나 고역이었다.  올라오니 이런 숨겨진 풍경에 감탄했다. 다음으로 조별 썰매를 탔는데 조금 겁은 났지만 썰매를 타고 내려오니 쓰릴있고 색다를 체험이었다. 썰매타기로 팀별 내기를 했지만 우리 3조는 꼴찌를 하게 되었다. 꼴지중에서도 1등 했기에 참으로 할말이 없다. 썰매를 탄 뒤 다시 낙타를 타고 입장하는 곳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여기서 번호표를 잃어버린 조원들은 걸어 온다는 얘기에 조금 쫄았을 터!! 그런데 태워 주더라!! 중국말 못한다는 이유로...!!정작 중국말 잘하는 진혁이형은 걸어왔다고 한다. 이후 차로 이동해서 다음으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사막을 다녀오니 갈증이 나서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맛은 최고였다.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쉴틈없이 막고굴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삼장법사가 지나가서 유명하다는 막고굴은 돈황에서 유명하다. 그리고 세계 유산인 막고굴은 자주 보수를 필요하기 때문에 보수를 위한 비용을 위해 입장료가 비싸다고 한다. 추가적인 설명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돈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돈황예술을 꽃피웠는데 그중 대표적인 세계불교유적지로 유명한 것이 막고굴이다. 이 막고굴은 서기 366년 승려 악준이 명사산과 삼위산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약 천년동안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등이 굴을 팠으며 그 수가 약 천 개 가량이 된다고 한다. 그 굴중 17번 굴은 우리나라 신라 혜초스님이 남긴 ‘와오천축국전’ 이 다른 보물들과 잘 보전되어 있단다. 1000개의 굴이 있다하여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굴마다 불상의 형태나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이 유물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는 약탈로 인해 수만점이 해외로 유출되어 현재에는 분사 보관되고 있단다. 

막고굴을 보고 다음으로 서진벽화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 묘실안이 상당히 어둡기 때문에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들어가야 한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묘분이란다. 묘분 입구에는 벽돌형식으로 쌓아 만들어 놓은 묘분이 있는데 벽돌 하나하나에 벽화가 새겨져있고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부엌과 화장실등 이승에서의 집처럼 구조를 꾸몄다. 등잔을 놓았던 자리 관을 두었던 자리들의 흔적들도 뚜렷이 보인다.

다음으로 돈황시 박물관(도로쪽 정원에 큰 낙타상이 있음, 주로 돈황주변에서 발견된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돈황이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당시의 유적들이 주를 이룬다. 막고굴17번 굴과 양관이나 옥문관에서 출토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을 들렸다가 구경하고 우리의 숙소인 태양촌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일정이 빡빡해서 온몸이 피로 했다. 가자마자 씻고 나니 9시다. 9시에 호텔 앞에서 양고기 파티가 있다고 했는데 9시가 되어도 아무도 없다. 찾아보니 모두들 피곤해서 그런지 자고 있었고 동훈이랑 나는 모두들 깨우러 돌아다녔다. 기정이형은 배탈이 나서 몹시 고통스러워 했다. 그래서 파티에는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10시 부근 되니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기정이형이랑 현도 빼고는 다 모인 것 같았다.현도는 몹시나 피곤해서 뻗어있어서 못깨운 듯 하다. 여기 태양촌 호텔 앞에는 양고기를 파는데 한집이 운영하는게 아니라 두 집에서 팔았고 둘이서 경쟁하고 있었다. 참 웃긴 것은 우리 테이블 경쟁가게에서의 가게 주인이 어제 먹으라고 포도를 줬었는데 우리는 다른 집에서 먹고 있었다. 가게 주인 얼마나 섭섭할까? 참으로 아이러니 했다. 그건 접어두고 일단 우리 지금 이 밤을 즐길때가 왔다. 오늘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고랑주가 앞에 있다. 딸기향나고 속이 타들어 가는 양주인 바카디 같은  53도짜리 중국 술....참으로 먹고 싶었는데  발톱때문에 포기했었지만 이제는 마실테다. 도저히 참을수 없는 유혹이었다. 국장님이 한잔주시니 얼른 감사히 받아 마셨다. 양고기도 향신료를 적게 쳐서 우리 입맛에 더욱 맞았다. 이제 우리 팀원들 끼리 어색함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렇게 술자리를 하니까 더욱더 허물어진다. 모두들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고 웃고 떠들고 즐겼다. 몇몇 나오지 못한 분들이 안타까웠지만 밤은 항상 즐겁다. 내가 여기서 사귄 친구들중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과 가이드 형이랑 남아서 다시 2차, 3차를 즐겼다. 3차때는 불이 꺼지고 테이블 하나에 거하게 마셨다. 2차 때는 고랑주가 몇 병 마실지 생각안하고 그냥 막 시켰다. 돈이 어마어마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가이드형 통이 크시다 정말. 가이드형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이때까지 몰랐었던 조선족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도 북한에도 한국에도 속할수 없는 그런 중간에서의 고달픈 인생을 들을 수 있었고....북한은 생활고를 겪지만 조선족은 생활은 그닥 어렵진 않지만(먹고 살만큼은 산다고함)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올림픽할때도 중국을 응원해야할지 한국을 응원해야 할지 골치아픈 고민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철근이형이 가이드 시절 그때 당시 국회의원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을 가이드 한적도 있단다. 그리고 같이 골프도 쳤었다는...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몇몇 진짜 곤란한 손님들도 많이 만나 보았단다. 그런 손님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친절한것이라 한다. 그 손님들중에는 자기가 중국에 좀 여행해봤다는 손님이 있었다는데 사사건건 여행때마다 트집을 잡고 흐름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손님들 마저도 그 손님을 싫어했고 참다참다 못한 철근이형은 그 손님 멱살을 잡고 내리라고 했단다. 그래서 사과를 받고 안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고 한번 봐줬다는데 또다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 못한 버스기사가 칼을 꺼내 죽인다고 협박하니 결국 여행 끝날때까지 입 다물었다고 한다. 그뒤 마지막날에 그 손님을 제외한 모든 손님들이 그 사람을 완전 없는 사람 취급했고 여행은 재미있었지만 그사람 때문에 여행을 망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사람은 마지막 소감말하는 시간때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지만 그 손님들 생깠다는 말에 참으로 재밌었다. 철근이형이 가장 아끼는 진혁이형 경원이형...특히 진혁이형을 좋아했는데....차박사라는 이유로 찬양할 만큼 좋아했다. 그리고 진혁이형이랑 경원이형이 사주를 볼줄 알아서 함껏더 재미를 주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사주보는 분위기로 변해서 많이 다운 되었던지 한두명씩 빠져 나갔다. 나와 주현이와 은결이만 끝까지 남아서 밤을 즐겼다. 나는 연한이 많다던데 그 말은 여자관계가 복잡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은근 기분 좋았던 것도 있었는데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주현이한테는 말년에 복이 온다나..남편이 나중에 아프다라던지 그리고 성격이 너무 세다던지 자기 기를 죽일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던지 남자가 많이 꼬일 스타일이라던지....좋은 얘기도 나왔지만 안좋은 얘기에 주현이 열받아 따진다. 그 상황 본사람만 이해할만큼 재밌었다. 진혁이형은 계속 공짜로 사주를 해주다보니 자기 주위에 사람들이 안좋은 일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복채를 받겠다고 해서 복채를 주었다. 계속 마시다가 경원이형이 과하게 드신데다가 은결이 흑기사 해준것에 결국 속에 것을 쏟아 버리시고는 들어가셨다. 그리고 애들이 자꾸 진혁이형 말로 괴롭히니 진혁이형 한마디 한다. 나 여자는 못 때리는 데 무예를 쓸수 있다고 ....뭔가 그말이 때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것 같아서 재미었다. 모두를 배꼽잡고 웃었다. 그리고 가이드형 진혁이형보고 너는 말좀 줄이라면서 술만 먹으면 말을 반복한다고 핀잔을 준다. 또 한번 배꼽잡아 웃었다. 그리고 진혁이형 술 깨러 간다고 하더니 뒤에서 태극권을 하지 않나?? (수박을 반으로 쪼개서 너주고 나주고=태극권 가르쳐줌) 참으로 독특한 형이었지만 착하고 재미있는 분이였다. 그리고 웃긴게 국장님 계장님 가이드형한테는 담배펴도 되냐고 물어보고 쉽게 필려고 하다가 주현이와 은결이가 담배피지 말라고 한마디 하니 바로 깨갱....바로 저만치 멀리 가서 담배를 핀다. 국장님 가이드형 뭔가 아쉬운 듯 쳐다본다. 진혁이형은 정말 순수했고 재미있는 분이었고 모두를 아껴주는 그런 형이었기도 했지만 중국여행에서 없어서는 안될 믿음직 스러운 형이었다. 뒤이어 가이드형이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셨는데....지금 내가 만나는 청도애가 혹시나 너에게 돈을 필요로 하던지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지는 않냐고 물어보시길래 아니라고 했다. 말하는 즉 나에게 돈을 필요해서 접근했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리고 걔가 공부에 그닥 관심이 없다고 하니 혹시 모르니 조금 많이 생각해보고 만나라고 또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고 한다. 그냥 한국에서 좋은 남자 하나 골라 가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여자일수도 있다는 말인 듯 하다. 나에게는 엄청 좋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건 절대 아닌데 하면서 고민 하고 있으니까~자기가 한말 너무 신경쓰지 말란다. 또 물어보시던데 걔가 어느정도 돈은 쓰냐고???하니 내가 그랬다. 걔가 돈을 쓸때가 많다고 내가 돈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했고 그리고 나를 너무 사랑해준다고 하니 그럼 됐다고...널 진짜 사랑하는 거니까 꼭 잡아라 하더라...그말인즉...돈을 보고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판명했다는 그런 의미로 들렸다. 그말 들으니 아까 들은 이야기 다 잊어버리고 기분이 날아 갈 것 같다. 그런데 청도여자들이 기가 세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잡혀 살수도 있다고 한다. 그말이 조금 이해가 되긴했는데 그래도 사랑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그리고 진혁이형 곧 중국가서 3년간 사신다는데 나 진양이랑 같이 놀러 간다고 기약없는 약속을 해버렸다. 이로써 제일 행복했던 중국에서의 밤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 이틀동안의 태양촌 호텔을 뒤로 한 채 이동했다.    




5일차

아침일찍 하밀을 향해 이동했다. 하밀은 2002년 인구 12만 6천정도의 신강자치구 동부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천산산맥 동쪽 끝 남쪽 기슭에 있다. 예로부터 북방유목민이 타림분지를 향해 남쪽으로 진출하는 거점의 하나로 중요시 되었다. 이곳에는 이란계 상인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여 통상활동을 하였다. 여기에는 하미과가 이곳의 특산물이다.

중간에 화장실 때문에 내렸는데 자연화장실을 이용했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바람이 많이 불어서 일직선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과일 한접시 하고...소변보고 먹는 과일맛은 상상에 맡기겠다. 우연히 차 앞에 쓰러진 쥐 한 마리가 눈에 띈다. 귀는 큰 게 토끼같은데 쥐란다. 긴 꼬리에 이쁘게 생겼다. 어떻게 쓰러진 건지...보존상태가 좋은걸 봐서는 차에 부딪힌 것 같지는 않은데 더위에 쓰러진 듯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빨리빨리 이동했다. 푹 자고 피곤한 건 없었지만 차 이동 동안 충분히 잠을 취했고 쉬었다. 차가 수리를 해야 한데서 중간에 카센터 비슷한 곳에 섰다. 정차 중 앞에 중국여자가 자기 가게 오라고 유혹을 하는 듯 쳐다보고 있다. 디카로 찍으려니까 부끄러운지 들어간다. 패션이 조금 멋을 낸듯한 느낌이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부끄러워도 장사는 해야 되나 보다. 차 점검을 받고 식사를 하러 갔다. 가던 중 들개가 동네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있다. 참 안타까운 건 저렇게 들개를 풀어 놓고 있다가 사람 물어버리면 심각하게 상처가 전염 될껀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뭔가 동네가 먹을 게 없고 빈곤해 보였다. 지나가던 중 길거리에 당구판들이 즐비했는데 포켓볼 밖에 없다. 중국식 당구라고 한다. 전에 먹었던 곳인데...별 감흥이 없고(일단 비슷한 음식 메뉴들이 나오기 때문에) 식사를 마친 뒤 앞에 슈퍼가 있어서 일행들과 같이 무단횡단을 하며 갔다. 참 한국이미지 안 좋게 심어가는 듯하다. 변명 할 수 있는 게 횡단보도가 없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게 앞에 유모차에 애들이 있었는데 귀엽다. 여자애는 사람을 잘 따랐고 남자애는 뭔가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다가가니까 싫어 하더만 여자애들 다가가니 손도 흔들어 주고 잘생긴게 미소 한번 띄어주니 여자애들 좋다고 죽는다. 슈퍼 들어가서 음료수와 중국 프링글스 같은 느낌의 과자를 샀다. 근데 대박인 것은 양꼬지 맛이란거...엄청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놈이다..양꼬지맛 프링글스 의 전속 모델은 주걸륜이란 사람인 듯 하다. 이 사람 만능이라 하던데...농구에 영화에 공부에 기타등등.....그 옆집에 옷집에 들어가보니 exr풍(exr짝퉁)에 티셔츠도 많고 뭔가 우리보다는 화려한 무늬있는 것을 선호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옆집에 빵집에 갔는데 케익크인지 뭔가 모형물 같기도 하고 이상했다. 생크림이긴 한데 뭔가 어설픈 뭔가가 있다. 빵집 주인 우리가 와도 나와서 보지도 않네...그냥 휙 나갔다. 현영이 신나서 오토바이위에서 사진 한방 찍었다. 주인 아저씨 올까봐 무서운 듯 얼른 찍고 내려오더라. 이제 다음 행선지인 회왕릉으로 이동했다. 하미국은 17세기부터 약200년간 청나라의 위탁을 받아 이지역을 통치했던 작은나라로 왕과왕비 및 왕족들의 왕실묘가 바로 “회왕릉”입니다. 왕족이 이슬람을 믿는 회족이었기 때문에 이슬람 양식의 관과 건물, 사원이 있고 이 이슬람 사원안에서는 지금도 예배가 이루어지며 이슬람신도는 입장료를 받지않는다. 예배를 드리는 사원에는 총108개의 기둥이 있는데 전통적인 이슬람 양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아마도 불교의 영향이거나 황제의 수라고 불리는 9를 암호처럼 숨겨놓은것이라 보임. 가던중...이 동네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큰 기둥같이 생긴 건물이 있기도 하고 무슨 큰 지붕만 있는 주유소 같은 분위기의 건물도 보았다. 여기저기 다 둘러보고 싶지만 다음 행선지는 회왕릉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내부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안되었고 왕의 무덤들이 즐비한 곳이라서 조용했고 시끄럽게 하면 제재를 당할 정도였다. 무덤의 규모는 컸고 건물의 외부 양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왕과 왕비의 무덤 모양은 구별될수 있듯이 달랐고 아기 무덤도 있었다. 남자의 묘는 복숭아 모양의 묘였고 시신은 천으로 3번을 감싼다고 한다. 여성의 무덤은 시신을 천으로 5번 감싼다고 한다. 건물의 지붕이 하밀족의 모자모양이었다. 중간에 왕과 왕비의 옷을 입고 사진 찍는 텀이 있어서 희망자들은 옷으로 갈아입고 왕이 앉는 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참으로 우스꽝 스러웠지만 재미있었다. 왕의 무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너무 밝게 즐거워 보였다. 다음 식사하러 갔다. 탕수육과 고기 반찬이 우리의 식욕을 돋구었다. 맛도 있었다. 시원한 국물 까지...밥먹고 나오니 여자 애들 둘이서 쎄쎄쎄 하고 논다. 옆에 같이 한국식 쎄쎄쎄로 응대해주니 애들 순수하게 웃는게 참 보기 좋다. 맛간으로 우리 팀들 모두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현지인들은 신기하듯이 쳐다 봤고 우리는 집중되는게 더 기쁜지 더욱더 미친 듯이 재밌있게 놀았다. 처음으로 모두가 합했으며 순수로 돌아갔다. 여기 중국 특히 실크로드를 와서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락함과 편안함...꿈만 같은 이 모든 시간들...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이후 다시 숙소(가격달빈관)로 돌아 왔고 오늘의 일정을 편히 마치게 되었다. 오늘씻고 중간점검이 있는 날이다. 모여서 다과회하면서 중간 소감을 말하는 자리였다. 나는 발톱을 뺀다고 조금 늦어서 미안했다. 모두들 소감을 말하는데 이 여행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더 보완할 점들도 속속들이 나왔다. 예를들면 팀간 활동이 너무 적다 조의 의미가 없다. 노랑풍선 여행사 루트와 너무 겹친다. 가이드에 너무 의존한다. 등등 많이들 나왔다. 나는 따로 지적할 점은없었고 나를 뽑아준 국장님 계장님께 감사했고 모두들 같은 시간을 보내서 고맙다고전했다. 남은 일정 무사히 행복하게 보내자고 했다. 다른 사람보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 부끄러웠다. 저마다 소감을 끝냈고 뒤이어 안마시간이 왔다. 모두들 앞사람 어깨를 하나씩 잡고 안마를 해주었다. 모두들 힘들었을 텐데 팀원들부터 챙겨주는 마음씨가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나또한 열심히 힘들어 보이는 팀원들의 어깨를 있는 힘껏 주물러 주었다. 맛있는 과일도 먹고 다과회가 끝나고 자려는데 다시 소수의 팀원들끼리 술자리가 펴졌다. 얼른가서 한자리 잡았다. 안주는 딱히 없었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귀한 라면과 참치가 인기값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아까전에 샀던 프링글스를 뜯었다. 맥주는 호텔 바로앞에 가게가 있어서 맥주 5병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왓다. 바닥에 수건을 깔아 술판을 벌였다. 은근히 술자리 다워보였다. 못다한 이야기와 저마다 행복을 나누었다. 이번 중국여행의 밤은 항상 아름다운 것 같았다. 그리고 맥주병이라고 알고 있던게 음료수라는 것을 알고 놀랬다. 분명 맥주병이라고 병에는 적혀있지만 부착된 종이에는 음료라고 적혀있네...!!참으로 이렇게 낚이다니...맥주5병으로 벌칙주도 만들며 게임을 시작했다. 산넘어 산이란 게임과 마피아게임을 했다. 산넘어 산 하면서 기정이 형의 새로운 자아를 찾게 되었고(변태기정이라는 별명을 갖게된 사건) 마피아게임 하면서 항상 먼저 죽는 나의 운명을 실감했다. 뭔가 어색한 연기에 모두들 나를 죽여버린 것이다. 항상 아쉬운 밤이었지만 오늘 만큼 아쉬운 밤은 없었다. 모자란 맥주를 모두 비우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참았다.



6일차

오늘 아침 일어나서 아침밥은 차에서 해결했다. 어제 먹었던 안주들과 맥주 때문인지 속이 안 좋아서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먹기로 했다. 아침메뉴는 소세지, 팩 우유(고소함-맛이 조금 특이함), 빵2개, 오이, 계란 푸짐한 아침메뉴였다. 들어보니 은결이도 배탈 났다고 한다. 나도 속은 아프지만 여자인 은결이가 더 걱정되긴 했다. 차로 1시간 가량 이동해서 바리쿤 초원으로 이동했다. 하미시 북부의 바리쿤현에 있는 초원이다. 공기가 매우 시원하고 상쾌해서 하미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많이 찾는단다. 한여름인 7,8월의 저녁 무렵에도 따뜻한 옷을 걸쳐야 할 정도여서 안시의 바람, 투루판의 폭염과 함께 시청삼절로 꼽힌다. 한, 위구르, 몽골등 10여개의 민족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어 양을 치는 유목민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비가 올 것 같은지 구름이 많이 끼여 있었다. 그리고 많이 날씨가 쌀쌀했다. 이상한 유격훈련장 같은 분위기(말 훈련장인가 쉽다)의 기구들도 보였고 드넓게 초원이 보였고 평화롭고 맑은 그런 초원이었다. 그리고 기마민족답게 몽골족이 관리하는 말들과 카자흐 족들의 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몽고인들 집인 빠야라는 집(천막으로 된 집)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택시 같은 그런 오토바이가 돌아다니며 타라고 한다. 분명 돈을 받을 것이니 거절했다. 그리고 말, 닭들을 모두 방목해서 참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의 예감대로 곧 비가 왔고 (이 지역에서 비를 보기가 어렵다는데 우리 팀은 비를 보게 돼서 참으로 운이 좋다고 한다.) 모두들 빨리 해산하려는 분위기였는데 국장님의 미션제안...팀원 전체가 현지인들과 빠야집 앞에서 사진 찍어 오기였다. 바로 모두들 뛰어 들어가며 몽고 집으로 쳐 들어 갔다. 민폐를 주지 않는가 싶어 미안했지만 그 현지인들 친절히 반갑게 맞이 해주었고 미션을 수행해주었다.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자 아주 좋아한다. 미소가 아름다운 민족이었다. 미션을 수행하고 화장실 다녀온 후 버스를 타려는데 발이 자꾸만 가시에 닿이는 듯 따가웠다. 발을 보니 멀쩡하더라..가시인 듯 싶어 슬리퍼를 손으로 만졌는데 뭔가 크게 베이는 느낌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젠장 슬리퍼에 가시가 아닌 칼날이 박혀 있더라...바로 양호선생님 덕분에 치료할 수 있었고 현철이형이 고맙게 시리 칼날을 빼주었다. 진짜 신기한 것은 발은 멀쩡하다는 것...모두들 나를 걱정해준다. 고마웠다. 그리고 주목받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런 목적으로 다친건 아닌데...지금까지 발톱 빠지고 손 베이고 뭔가 불안한 징조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생겨 불안하다. 조심히 다녀야 겠다. 이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창밖으로 말로만 듣던 양치기소년이 양떼들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시냇물 근처에 내렸다. 이 시냇물은 천산산맥 만년설에서 흘러내려온 물이란다. 손을 담그니 엄청 차다. 정말 얼음물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리고 주위에 소들이 방목해있어서 신기했다. 산속에 소한마리가 있는데 우리가 무서워서 그런지 숨어 있는 듯 하다. 계속 우리 가나 안가나 눈치보고 있는게 귀여웠다. 여기 소들은 다 건강할 것 같은게 아주 깨끗해보이는 천산산맥 물을 마시고 있어서 하나 가두어 사는데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편히 생활하는데 있어서 둘 마지막으로 산들을 이동하며 다녀서 그런지 소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차를 타러 가는데 온데 소똥들이 즐비했다. 지뢰 밟을라 조심히 지뢰 탐지 하듯이 천천히 조심히 갔다.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쿠므타크사막(선산)으로 이동했다. 전에 끊었던 입장권을 들고 입장했다. 여기서는 기차같이 생긴 전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여기는 사막의 미세 모래 때문에 완전 무장을 요구했다. 마스크에 전과 동일한 복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엄청 더웠다. 마치 찜질방에 있는 기분이었다. 동훈이는 포기했는지 티 한장에 반바지 차림이다. 기차가 이동했고 가는 도중에 호수가 보였다. 오아시스 같았는데 하늘이 비친 호수는 절경이었다. 호수를 지나니 진정 사막으로 왔다. 메마른 땅에 풀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명사산의 사막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다. 뭔가 사막다운 진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더욱 메말라 보였고 뜨거워 보였다. 기차같은 전동차에서 내렸고 이제 속도감있는 사막용 자동차를 탄다고 한다. 내가 운전할 수 있을지 은근 기대했는데 따로 운전수가 있더라. 운전하는거 보니 절대 운전 불가능이다. 고랑이 몇 고랑을 지나야 하는데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암튼 타게 되었는데 속도감도 좋았고 스릴 넘쳤다.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었다. 정상에서 조금 딜레이가 있었는데 모래가 엄청 뜨겁다. 이게 진정 사막이구나!!여기에 있다가는 말라 죽을 것 같다. 곧 우리차가 왔고 출발 했다. 곧 입장하던데로 도착했고 그 주위에 몇 가지 볼거리가 있어서 구경했다. 뭔가 고대의 유적물 같은 분위기 였는데...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거 보니 그냥 멋스레 만들어진 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탑같은 것도 있었고 흙으로 만든 집 같은 것도 있었다.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었는데 왠지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가족 사진 찍는 느낌이랄까??암튼 모두들 이제는 서먹함도 없어지고 화목하다...좋아.!! 쿠므타크 사막에서 나와서 차로 이동 중 중간에 내렸다. 여기가 서유기의 배경이 되었던 화염산 부근이다. 모두들 서유기의 손오공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질수 없이 각 잡힌 포즈로 하나 남겨 놨다. 사막같이 메마른땅 이었는데  옆 절벽 밑으로 물이 흘렀고 수풀들이 자랐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기가 진정 화염산 오아시스인가 싶더라. 그리고 저쪽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는데 그쪽에서 썰매를 탄다고 한다. 옆으로 썰매탄 흔적도 여럿 보인다. 다시 차를 타고 계속 이동했다. 옆으로 화염산(톈산 산맥의 황무지 산으로 붉은 사암언덕이다. 화염산은 북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마의 경계와 동쪽으로는 투르판 시와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같다고 하여 화염산이다. 여름에는 섭씨 45도를 오르내리고 지면의 온도는 80도를 웃돈다고 한다. 화염산은 총 98km길이와 9km의 너비를 가지며,타림분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이 책에서 화염사의 형성은 손오공이 천궁을 소란시킬 때 태상노군의 련단로에서 뛰쳐나오면서 불에 타고 있는 벽돌몇개를 인간세상에 떨어뜨려 만들어서 덥다고 했다. 화염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850m에 불과하지만 해수면보다 낮은 투루판 분지에서는 높게 보인다.)이 보이는데 산 높이가 어마어마 했다. 관광객들이 직접 오를수 있게 관광목적으로 계단이 개발되어 있었다. 멀리 봐도 아찔한 높이였다.  이제 고창고성(고창고성은 사각형의 외성과 내성이 있는데 외성의 둘레는5.4km이고 내성의 둘레는 3.6km면적은 220만m2이다. 흙성벽 밑부분의 두께가 12미터 정도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최고 높이가 11미터에 이르는데 처음에는 더 높았다고 한다.교하고성보다 100년이 늦은 2100년전에 건설된 고창고성은 BC 104년 이광리가 키르기스스탄으로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진군하던 중  시원한 물줄기를 찾아 헤매다 발견한 곳이다. 이광리가 이곳에 성을 쌓고 부상자를 돌보게 한 것이 바로 고창국의 시작이 됐다. 원래 성벽은 높이가 약 12m정도였으나 거의 허물어져 군데군데 남아있다. 고성은 궁궐, 내성, 외성의 세구조로 되어있다. 현장법사가 불교를 설법했다는 원형의 불교사원 복발탑도 구경했는데 복발탑은 천정에 원형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현장법사가 400명을 모아두고 설법하던 강의실로 흙을 말려 만든 벽돌을 쌓아 만들고 천정은 원형으로, 바닥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소리의 울림을 조절했다고 한다.)이란 곳에 도착했다. 고대 유목국가인 고창국의 유적이란다. 들어오니 유목민족 스러운 민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미리 끊어놓은 입장권을 이용하여 고창고성 내부로 들어갈수 있었다. 여기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했다. 아쉬움에 입구에서 몇장찍기는 했다. 입구 표지판에 사진금지, 담배금지라고 표시되어있다. 근데 입구 바로 앞에서 담배꽁초가 쌓여 있다. 매너있게 입구앞에서 끄고 가는 센스가 묻어나있다. 고창고성으로 들어가니 보수중인 건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래 바람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이 부서지고 허물어 졌다. 계속 가는중에 어떤 아저씨가 기타같이 생긴 악기로 우리를 응대 해주었다. 즐거운 맘에 옆에 가서 밸리댄스같은 것을 추면서 음악과 즐겼다. 근데 사진 찍고 나오니 가이드 형이 사진찍고 팁좀 주라는 것이다. 미안하게 사진찍을거 찍고 음악만 듣고 나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저씨는 그런 목적으로 부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대접을 행하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 2원을 주고 왔다. 2원을 주니 모자도 씌워지고 없던 포즈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더 열정적으로 기타를 쳐주셨다. 고창고성안을 지나서 나오니 당나귀 마차가 준비되어있었다. 이전에 당나귀가 빨강색을 좋아한다고 가이드 형이 일러주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가고 싫어하면 빨리 간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내가 탄 당나귀는 참으로 느긋했다. 단연 꼴지 였다. 답답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우리를 좋아하는 구나 생각이 들으니 괜찮네...!!당나귀를 타고 이동하여 도착했다. 도착하니 성벽들이 많이 허물어 졌고 풍화작용이 심하게 들었다. 여기 나있는 길을 제외하고 물을 붇거나 땅을 밟는 것을 조심하란다. 땅이 꺼질수도 있으니까...그래서 겁이나기도 했지만 진담인가 하고 밟고 싶은 충동도 생겼다. 쭉쭉 가보니 어느 감옥이 나타났다. 감옥은 옥상이 평평했는데 군인들이 거기서 보초를 쓴다고 한다. 여기에 우리 팀원들 중 1명을 가둬놓고 다음 2기때 데려오자는 얘기에 배꼽잡고 웃었다. 기수 바뀔 때 마다 바꾸자고 말이다. 여기가 성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많았는데 예전 고대때는 모두 목적을 두고 만들었을 터!!모든 건물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하던 건물인지 알지 못한데에 대해서 아쉬웠다. 다시 당나귀를 타고 입장하는 곳까지 타고 왔다. 여기에는 애들이 관광객들에게 많이 모여 드는데...아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준다. 그치만 그 뒷면모에는 돈을 원하고 소매치기를 하려는 어두운 속내가 숨어있다는 얘기에 미소에 아름다웠던 애들이 뭔가 삶에 허덕이는 듯한 모습인 듯해 보였다. 자꾸 나에게 붙어오는 애들을 떼어버리고 빨리 차로 이동했다. 다음으로 천불동이라는 곳에 갔다. 투르판 관광의 백미라고 할수 있는 곳이란다. 지금은 거의 다 훼손되었고 석굴로 된 사원이라 한다. (원래 명칭은 배제클리크 천불동이며 백자극리라는 말은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으로 백자극리 천불동은 화염산중단의 낭떠러지에 조성된 굴사원이다.고창고성에서 15km떨어져 있고 신장시내와 교외지역에 남아있는 불교석굴사원중의 하나이다. 굴사원에는 83개의 석굴이 있고 현재 57개가 남아있다. 총 면적은 1200평방미터에 이르고 있어서 투루판에 현존하는 석굴중 제일 크고 벽화의 내용도 가장 풍부하다.)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는데 아스타냐 고분군으로 갔다. 여기에 들어서자 마자 느낀 것은 왕후가 살아있던 곳 같기도 하고 중요한 시험을 보는 곳 같기도 하다. 그리고 동상들이 둥글게 모여있었는데...십이지신이 여기건물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십이지신이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두손을 모아 서있었다. 그것 외에는 없었고 다음으로 미라가 모셔져있는 지하로 이동했다. 여기는 남녀의 미라가 모셔있는 곳이다. 여기는 사진이 금지 되어 있는데 관리인이 따라다니면서 감시할정도로 엄격히 감시 하고 있었다. 그 미라를 보려면 지하로 내려가서 굴같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이 너무 어두워서 구분이 안갔다. 휴대폰 불빛으로 나마 미라의 윤곽을 볼수 있었다. 왼쪽미라는 키가 컸고 어깨가 좁았으며 허리가 잘록했다. 그리고 오른쪽 미라는 어깨가 넓었으며 키는 작은 편이었고 약간 체격이 컷으며 얼굴이 참으로 못생겼다. 그리고 발 한쪽이 잘려져 나가있었다. 여기서 가이드 형이 문제 하나를 냈는데 누가 남자고 여잔지 고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보기에는 왼쪽이 신체 구조상 여자라는게 확실했지만 뭔가 반전이 있을 것 같아서 오른쪽을 선택했다. 정답은 왼쪽이었다. 이런 쉬운 문제는 처음이라서 당황했었다. 미라를 보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우리 숙소인 투르판 호텔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식사부터 하고 숙소로 갔다. 이렇게 6일째의 일행이 끝났다. 오늘밤도 그냥 넘어갈수 없어서 술자리를 벌였다. 내가 먼저 제일 친했던 팀원들 방에 들어가니 이거 먼저 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뭔가 또 사연이 있었다. 어떻게 당나귀마차를 타고 술을 사러 가게 되었는데 가이드형과 뭔가 트러블이 있었나 보다...그래서 양고기와 맥주만 사고 와서 이렇게 먹지도 않고 묵묵히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아까전의 일 때문에 그런지 울상이었다. 일단 그 일은 접어두고 다시 밤을 즐겼다. 맥주가 모잘라 기정이형이랑 호텔 오른쪽에 슈퍼로 가서 맥주를 사왔다. 우리둘다 중국어를 거의 못써서 처음으로 바디 랭귀지를 썻다. 아는 단어라고는 이얼싼스 밖에 모르는 우리로써  싼이라는 단어를 썻고 젓가락을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게 원 소통이 안되서 펜을 이용해서 젓가락 시늉을 하니 없다고 한다. 포기하고 맥주만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가져온 참치와 사탕그리고 육포, 양고기를 포함하여 안주를 준비하고 술자리를 벌였다. 현도랑 현철형이랑 동훈이도 와서 게임을 즐겼다. 산넘어 산으로 몸을 풀고 마피아 게임을 시작했다. 모두들 성인이라서 그런지 수위가 좀 높았지만 재미있었다. 기정이 형의 변태본능은 알코올이 섭취되자마자 분출하기 시작했고 게임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다음으로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 기정이형 피곤해서 그런지 말이 없다. 산넘어 산 할때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옆사람을 곤란하게 하더만...그래서 심리전을 이용하는 마피아 게임을 했다. 현철이형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심리전 없이 죽이는 이 동네 마피아 게임에 몸부림 쳤다. 자기는 말을 해도 말 많다고 죽이고 말이 없어도 수상하다고 죽이고 참으로 이상한 동네라고 적응못해 하는 모습에 배꼽잡아 웃었다. 재미있게 놀다가 오늘밤도 이렇게 보낸다.



7일차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서 교화고성이라는 곳에 갔다. 교하고성이라는 곳은 투르판시내에서 서쪽으로 40km 가면 교하고성이 있다. 이름 그대로 2개의 강이 만나는 지역 중간에 성을 만들었다. 지금은 강물이 흐르지 않지만 그옛날에는 물 흐르는 강위에 우뚝 솟은 성이었을 것이다. 전한시절 차사왕이 다스렸으나 가오창왕국에 흡수되고 13세기에는 몽고에 복속되었다 하니 당시에는 가장 큰성이고, 지금 남은 성은 당나라 이후 건축된 것이라 하나 그래도 1000년이 넘는 오래된 토성이다. 사방이 절벽이고 따로 성벽이 없다. 기후가 건조하고 비가 오지 않고 벽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파내려 가는 방법으로 터를 만들어 진흙 성벽을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단다. 길이 1700m, 폭300m인 성안에는 관청터가 있고 집터와 절터가 있다. 어린아이를 묻었다는 묘지까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계획도시였다고 짐작된다. 도착하니 맨 처음 떡하니 큰 지도가 눈에 띄었다. 그 지도가 교하고성의 지도를 나타낸 듯 한데....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저만치 멀리서 중국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노랑풍선이 아닌 빨간 모자 였다...단체로 빨간모자를 쓰고 깃발을 세우고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여행 중에 한국은 기러기 족이라 한다. 무리지어 가는 것보다 사진 찍기 바뻐서 자꾸 뒤쳐져 간다하고 서로 떨어져있다고 해서 그렇단다. 일본이 가장 경청을 잘 한다는 데...오리족이라한다. 잘 따라 다닌다해서 그렇다고 한다. 또 중국사람들이 무서워서 살기위해서 잘 따라다닌다고 한다. 길이 나있는 곳을 따라 이동했다. 약간 고창고성을 다시 오는 듯한 기분으로 이동했다. 여기도 심한 풍화작용과 건물들이 훼손되어있고 허물어져서 고대의 찬란했던 그 모습을 자세히 재현할 수는 없는 듯 했다. 성이라서 그런지 이곳 저곳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상상해본다. 예전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던....그리고 온전히 남아있는 건물들....시끌한 시장이 생각난다. 다음으로 멀리 낮게 자리 잡은 아기무덤들이 보인다. 우리와 무덤사이는 울타리로 막혀져있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큰 무덤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이 묘했다. 멋있기 보다는 먼가 안타까운 느낌도 많이 들었다. 여기는 200명이상의 유아가 묻혔다고 한다.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고 한다. 계속 나있는 길로 지나가면서 한 성벽 밖으로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낭떠러지로 햇살에 비친 숲들과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은 가히 아름다웠다. 절경이었다. 이 성벽 높이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서 위에 서있기가 아찔했다. 이 성벽을 어떻게 세웠는지도 참으로 의아했지만 규모에 한번 더 놀라웠다. 기정이 형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이리저리 움직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작품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가장 북쪽 스님이 묵는 절이라는 표지판이 적힌 곳이 보였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절이라고는 생각도 못할만큼 평범했고 우리가 생각해오던 절과는 모양이 많이 틀렸다. 주위로 많은 건물들이 있었지만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살펴볼 수는 없었다. 많이 허물어져서 다소 안타까웠다. 오늘 나는 배탈이 났었다. 이때까지 너무 잘 먹은 탓인지 한꺼번에 찾아왔는지 아니면 어제 먹은 저녁이 잘 못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몹시 고통스러웠다. 발톱도 빠지고 손 베이고 다음으로 배가 아픈 고통을 맛보았다. 아침부터 설사를 했고 차이동중 계속 복통을 호소했다. 아이스크림을 주시길래 처음 거부했었는데 한번 맛만 보라고 하시길래 거절 하지 못하고 먹었는데 맛있더라.!!토마토캐첩맛 아이스크림이었다. 교하교성은 서역의 중심 교하국 유적지란다. 다음 행선지로는 카레즈로 이동했다. 카레즈는 3000년을 흘러왔으며 봄부터 여름까지 텐산의 눈 녹은 물이 지표면에서 증발되지 않고 사람이 사는 거주지까지 흐르도록 파놓은 지하수로를 일컫는다고 한다. 만약 텐산 산맥의 눈 녹은 물과 여기 카레즈가 없다면 유명한 투루판의 포도 경작은 물론, 인간의 생존여부마저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카레즈는 투루판 뿐 아니라 사막의 건조지대인 이라크, 터키 , 아프카니스탄 같은 곳에서 발견되는 수로 양식이며 투루판에 현존하는 카레즈는 주로 청대에 보수된 것으로 물길 2000여개, 총 연장 500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만리장성 쌓다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의 희생이 요구된 카레즈이다. 천산산맥의 지하수를 연결하기 위해 약 50키로 거리를 땅속으로 파서 연결하는 중국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이다. 카레즈는 3대기적중 하나인 큰 규모와 역사깊은 수로이다. 입구는 아주 멋져보이는 건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어서 굴로 들어갔는데 물이 흘렀다. 이제 천산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을 우물을 파서 이까지 흘러 내려 사용하는 물이라고 한다. 땅굴 깊이만 해도 1km가량이라던데 고대의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위대해 보였다. 곳곳에 동상들이 있었는데 이 굴을 파던 예전 고대 사람들을 재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 굴을 만들기 위해서 측량하던 이들의 동상들도 눈에 띄었다. 만약 측량 하다가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다시 해야하는 그들의 고통이 여실히 느껴졌다. 얼만큼 고생하고 이루어진 수로인가??가히 기적이라 불릴만 하다. 물은 엄청이나 맑아 보였다. 지나가다가 고대 민속옷을 입고 사진찍자고 호객행위를 하는 여자들이 접근했다.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를 외치면서 사진찍자고 달라 붙었다. 나는 몇차례 싫다고 했으나 경원이형이 2원을 잽사게 그 여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난 얼떨결에 사진을 찍긴 했지만 사진을 다 찍고 가는데 엉덩이를 치는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당돌한 태도에 많이 놀라웠다. 바로 다시 다른 사람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또 놀라웠다. 이 여자의 삶은 한평생 이렇게 사진찍고 돈을 버는 삶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 일에 불만족 보다는 행복함에 겨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우리보다 스트레스 없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 내심 부러웠다. 또 동상 중에 물을 퍼는 여인 동상도 있었다. 굴을 나가니 바로 시장 같은 곳이 나타났다. 전에 갔던 돈황 야시장과 거의 동일한 물건들이 보였다. 그런데 거기보다 물건 값 깎기가 쉬웠고 많이 싸게 팔았다. 가던 중 애가 보엿는데 사진 찍는 것에 익숙했는지 사진기를 대자마자 아무런 표정 없이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귀여워서 몇장 찍었는데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자기가 즐거워서 하는 의도라기 보다는 판매를 하는 목적으로 이렇게 응대하는데에 안타까웠다. 여러 가지 팔았는데 장신구 술 , 차 등등....관광객들에게 맞춘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있었다. 거의 출구로 다 오니 포도 쥬스를 판매했다. 즉석으로 포도를 따서 갈아만든 것이었다. 옆테이블에서 중국인 한명이 주현이의 외모에 반해서 관심을 계속 표현했고 사진한장찍기를 부탁했다. 사진 한 장 찍어주니 포도주스를 한잔 권해줬다. 주현이의 인기에 모두의 부러움을 사버렸다. 다음으로 소공탑(소공탑은 구조가 독특한 청나라 시대의 이슬람 건축이다. 투푸판의 군왕 소래만이 부친을 위하여 1779년에 세운 것으로 높이 37m, 지름 10m의 거대한 탑이다. 흙벽돌을 원주모양으로 쌓아 하늘로 치솟아 있고 꽃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무늬가 아름답다 그리고 이슬람 사원도 함께 있다.)에 갔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떤 한인물의 동상이 나왔었다. 종이 문서를 가로로 머리 위로 번쩍 들고있는 동상이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궁금했다. 그뒤로 소공탑이 보였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모두들 볼거리가 없는 것에 실망했는지 금방 나갔는데 나와 기정이형이랑 동훈이 셋이서 더 깊이 까지 들어갔다. 역시 진면목은 더 깊숙이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니 소공탑의 규모에 더욱 감탄하게 되었고 그 주위로 배경은 마치 궁궐의 정원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가꾸어진 정원 느낌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여기는 찜질방보다, 전에 갔던 사막보다 더 더웠다. 타들어 갈 정도니까 암튼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마른 땅과 무더운 날씨 엄청 건조한 날씨에도 수풀들은 살아 숨셨고 무성히 피어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나있는건지 미스테리다. 참으로....소공탑과 그 건물의 용도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근데 무척이나 궁금하다. 엄청난 규모에 놀라웠고... 아름다운 건축미가 느껴졌다. 빨리 이 무더위에서 나오고 싶었다. 몇가지 사진을 찍고는 다음 행선지로 이동햇다. 여기입구 근처에도 시장비슷한 상가가 있었는데 여기서 팔찌 하나를 구입했다. 내가 들어 올 때 산 가격은 10원이었는데 나갈때는 8원을 부르더라...!!참으로 이상한 동네일세...그리고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이동중 철근이형이 자기와 완전 현지식 밥을 같이 느껴볼사람 묻길래...속이 안좋아서 멈칫했지만 여기까지오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싶어 바로 손을 들었다...그 행운의 주인공은 동훈이와 나였다. 그래서 식당안에 들어가서 나와 동훈이는 기다렸고 모두들 음식을 즐기며 먹고 있었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고 빨리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향신료범벅인 양고기가 나올까???아니면 기름 범벅의 음식이 나올까 하며,...소심한 상상을 해본다. 드디어 철근이형의 호출이 들어왔고 재빨리 갔다. 조리실로 들어가나 싶더니 어느 이상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먼가 진수성찬이 앞에 놓여 있다. 완전 뷔페식으로 먹어도 보지 못한 음식들이 즐비했고 참으로 행복했다. 모든 음식이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릇에 모든 음시을 과하게 퍼담았다. 가이드형 하는 말로는 여기 가이드말고는 들어오기 힘든곳이라고 한다. 자기가 누구냐고 하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시원한 펩시콜라를 한번 들이키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꿀맛이다. 아까전 팀원들이 먹던 닭고기 음식에 비할수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족발같은 고기와 탕수육...국수 그리고 오래 썩힌 오리알등...묘한 맛이 일품인 중국의 최고의 맛을 느꼈다. 그리고 풍부한 과일(포도,토마토등등)과 현지식 요플렛도 먹었는데 꿀맛있었다. 햄맛이 나는 그런 반찬과 묵같은 반찬그리고 새우도 먹었다. 맥주랑 곁들이니 이거원 눈알이 돌 정도다...배탈난게 음식으로 나아진 느낌이다. 오랜만에 과식을 해본다. 아쉬워서 우걱우걱 입에 계속 집어 넣었다. 철근이형 알러뷰 선택해줘서..!!먹고나서 팀원들에게 엄청 자랑을 해댔다.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리고 다시 투르판 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너무 더운 날씨 덕택에 낮잠을 청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만 쉬다가 푹쉬니 피로가 완전 회복되는 느낌이다. 쉬고 나와서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로비에서 기다렸는데(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수없이 갔다 왔다는) 호텔내 상점에서 애기 가 있었는데 머리가 참으로 독특한 친구였다. 여기 애기들은 엉덩이와 앞부분이 모두 트여 있어서 다소 민망한 모습같았지만 애기니까 그렇게 민망하지는 않은 듯 했다. 애기가 사람을 정말로 잘 따라서 항상 웃고 잘 맞춰주었다. 너무 귀여워서 계속 놀아주고 싶었으나 바쁜일정상 빨리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다음 행선지는 포도 농가이다. 여기 포도농가는 ?????이란다. 그중에 가장 못사는 포도농가 집을 방문해 도와주러 간단다. 여기 지역 사람들은 인사해주면 무조건 받아줄 정도로 선한 사람들이 많단다. 이제 도착해서 내렸다. 도착하자마자 그 집안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로 맞아주었다. 여기 큰아들이 늠름한 인상으로 우리를 예의바르게 맞이해주었다. 들어가니 테이블이 옆으로 쭉 펼쳐져 있었다. 곧이어 수박과 여기 특산물인 포도를 갔다 주었다. 그 큰아들이 나와서는 우리에게 포도농가의 내력과 규모그리고 부가적인 내용을 철근이형의 통역으로 이해 할수 있었다. 곧이어 여기 큰 딸의 춤을 볼수 있었다. 음악에 맞춰서 아름다운 위구르 춤을 볼 수 있었다. 말하는 즉 큰딸은 춤을 배운적이 없고 티비에서 나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웠단다. 여기 지역에서는 춤솜씨가 가장 좋다고 한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배운게 아니라 직접보고 따라하면서 배운거라 이정도면 아주 춤 솜씨가 좋은 것란다. 그리고 여기 애들이 많았는데 딸둘에 막내아기까지 총 5명을 보았다. 막내아기는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딸둘이는 부끄럼이 많은지 많이 쑥쓰러워 했다. 모두가 아름다웠고 잘생겼었다. 위구르인들이 그렇게 미모가 좋다고 하더니 맞는 말이긴 하다. 다음으로 포도농가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지만 특별히 내부 포도 농가를 직접 보여준단다. 그래서 모두들 호기심 찬 눈으로 들어가서 포도향기에 취했다. 포도 말리는 과정도 볼수 있었고 특급 1등급 2,3,4등급 포도를 나누는 과정도 볼수 있었다. 옛날에는 떨어진 것은 버렸는데 요즘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상품으로 쓸수 있다고 한다. 여기 포도는 천산산맥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이용하는데 특급은 천사산맥의 물을 차단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대로 상태로 말리면 특급이 된다고 한다. 이후 말린 건포도의 품질에 따라 보여주었고 구별 법도 보여주었다. 구별법은 질이 낮을수록 먹기 좋아보이고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이 낮은 제품은 물에 넣으면 색소가 그대로 나와서 물색깔이 변하는 반면 좋은 질의 제품은 물에 넣으면 색소가 나오지 않는다. 좋은 제품은 향도 좋았고 맛도 일품이었다. 여기서 판매도 했는데 나는 차에 끓여 먹는 포도말린거(1봉지에 1년치 먹을건데 150원함 달러로 12달러정도함) 그리고 건포도도 500g샀다. 75원 가량했다. 가이드형 말로는 우리가 학생이기 때문에 싸게 해준다고 했다. 이제 살거 다 사고 앉아있으면 포도농가 아들이 돈을 수거 했다. 모양새가 참 아리송했다. 다 거두고는 인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나갔다. 바로 다음 일정은 양고기 통바베큐를 먹으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행사가 있었는데 조별로 나가서 춤을 춘다는 것이다. 춤은 민속춤을 추는 현지인의 춤을 따라서 제일 비슷한 사람이 상을 탄다나 뭐라나...대략난감이었지만 따라 하는거기에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은 적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공연단들이 춤출 준비를 했고 곧 통 양고기 바비큐가 나왔다. 모습이 얼마나 징그럽던지...여자들 기겁을 한다. 양고기 모양이 그대로 나타났기에 좀 보기 징그러웠다. 계장님이 나와서 공연복을 입고는 양의 등을 갈랐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무셨다. 가이드하는 말 계장님보고 이제부터 위구르족 제일 부자집 할아버지란다. 통바베큐 신고식(?)을 마치고는 뒤에서는 요리사가 양고기를 칼로 썰고 있다. 다음으로 민속춤을 추는 댄서 남녀가 나와서 민속춤을 췄다. 신기하기도 했고 낮선 춤에 재미있었다. 다음으로는 남 녀 개인 춤을 선보였다. 처음 남자의 춤을 선보였다. 춤을 추다가 우리 팀원중 은결이에게 춤을 권해서 은결이 나가서 같이 춤을 추고 나왔다. 둘다 잘 추더라!!은결이도 처음 추는 데도 얼마나 잘추던지...다음으로 여자분의 개인춤을 볼수있었다. 여자분도 같이 춤을 권했는데 계장님과 같이 춤을 췄다. 계장님 부끄러우신지 조금 추다가 들어가셨다. 다음으로 이제 조별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1조부터 나와서 춤을 췄다. 1조는 모두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엉거주춤 서있다가 주현이랑 기정이형 민속춤추고 은결이랑 진혁이형 태극권을 선보인다. 모두가 웃겨서 뒤로 넘어질 지경이다. 다음으로 2조 서현누나랑 현철형 직접 민속옷을 입고 춤을 춘다. 둘다 특징을 잘 살려 잘췄다. 다음으로 3조 우리조다... 막상나가니 부끄럽고 이거 원 부담백배였다. 음악이 나오자 몸이 본능대로 나간다. 나는 뱅뱅 무대를 돌았고 동훈이는 밸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둘 개그춤을 선보이며 무대를 후끈 달아올렸다. 동훈이가 댄서와 팀원모두를 끌어들여 파티 분위기를 만들었고 재밌게 춤을 췄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다음으로 전체 나와서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나와서 춤을 췄고 남자 댄서가 중앙에 있었고 우리 모두가 주위를 돌며 춤을 췄다. 댄서가 꽃을 들고 주현이한테 주더니 주현이를 두손으로 들어올려 원을 그리며 돈다. 주현이 비명을 지르며 행복에 젖어있다(^^)다음으로 여자 댄서분이 꽃을 떨어 뜨렸고 남자중 한명이 꽃을 들어야 한다. 나랑 현철이 형 나와서 꽃을 물며 싸웠다(?) 결국 현철이형이 꽃을 거머쥐었고 현철이형은 가벼운 사람을 고르다가 길주를 보고 길주에게 꽃을 주고는 길주를 두손으로 들어 원을 그리며 돌았다. 파티가 끝났고 모두들 재밌있어 했다. 식사를 끝내고 다음으로 바자르 시장으로 갔다. 갈 때 이동수단은 당나귀 마차였다. 타봤던 터라 그닥 느낌은 없었는데 차가 달리는 도로 한복판을 달리니 스릴이 넘쳤다. 사고나면 끝장이었다. 우리가 탄 당나귀는 정말로 느려 빠졌다. 늙어서 그런가 힘이 없었고 계속 설려고 했다. 그래서 주인이 작대기로 엄청 때리더라..도저히 당나귀가 안가자 주인 아저씨 내려서 직접 당나귀를 끌고 가더라...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재밌었다. 때려도 말 안듣는 것이 당나귀 정말 힘들긴 힘든가 보다...모두들 당나귀가 불쌍해서 안타까워 했다. 야경을 보며 달리니 멋졌다. 건물들의 화려한 네온사인하며 늦은 시간에도 시끌벅적한 야시장하며 모두가 좋아보였다. 우리가 도착한곳은 큰 대형 마트였다. 여기서 또다시 미션이 떨어졌는데...그건 바로 각조가 배당된 물건을 사오라는 것이다. 마트 내려가는 계단에서 카운트다운이 세졌고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 마자 너나할 것 없이 모두들 뛰어 들어가 온갖 물건을 헤집었다. 현지인들 우릴 보더니 웃기도 하고 일하는데 방해해서 짜증나는지 짜증내기도 했다. 그런데 민폐 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이미지도 안좋아보이고 참으로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일단 미션이다보니 빨리 우리조가 배당된 수건을 사러갔다. 현지인에게 내가 가져온 수건을 보여주며 가르키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싼 가격을 찾다가 시간을 조금 보냈지만 우리가 이길 것을 확신하고 갔지만 이게 왠일...우리가 꼴지다. 모두들 미친 듯이 찾았나 보다..아쉬웠지만 재미있었다. 이어써 1시간 가량 자유시간을 부여받았다. 쇼핑을 하다가 그렇게 딱히 사고 싶은게 없었다. 산 것은 한국에 갖다줄 라면(한번 중국라면 맛보라고)과 중국 젤리를 사들고 갔다. 구경하다가 양호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이 애기 옷을 고르는게 보였다. 나도 우리 조카나 사줄까 하는 생각에 가보니 엄청싸고 이쁘단다. 그래서 나도 선생님들의 조언을 듣고 하나 구입했다. 한국에서 옷사면 많이 비싸다는 얘기에 나도 바로 사버렸다. 39원이었고 8000원 가량 하는 돈이었다. 선생님왈 좋은 삼촌이 되실거에요 하시니 기분좋아졌다. 옷도 사고 먹을 것도 사고 보이차도 두 개나 샀다. 오늘 이렇게 과소비를 하니 뭔가 돈이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언제 또 여기 와보겠냐고,...양손 무겁게 들고 마트를 나왔고 다시 당나귀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모두들 씻고 오늘밤을 마무리 할려고 했는데 1조 주현이랑 은결이가 와서 술자리에 초대했다. 우리조 애들도 있다고 해서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둘이서 한 중국인이 자기들을 계속 쳐다봤으며 계속 왔다갔다 보고 간다는 것이다. 무서워 하길래 궁금해서 나가 보니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같이 술방으로 갔다. 가던중 그 사람을 봤는데 우리 일행을 보고는 가더라....오늘 처음으로 약간 불안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술방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안주는 남은 과일과 라면 그리고 여러 가지 과자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따 일단 맥주가 코딱지 만하다. 1조가 사온 맥주 5병이 전부 였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는데....후에 국장님이 여기에 합류 하셨다. 계장님은 주무시는 듯 하고....국장님 맥주 더 사오신단다.....모두들 신나서 환호성을 지른다. 나랑 길주는 양호선생님과 초등학교 선생님을 불렀다. 안부르면 섭섭할뻔 했다고 하시네....국장님이 직접사오신 맥주와 안주로 이제 게임을 시작했다. 팀별 미션이다. 겜명은 사람이 많은 관계와 게임에 약하신 국장님과 선생님 배려 차원으로 기정이 형이 좋아하는 산넘어 산이 아닌 3,6,9는 쉬우니 좀 바꿔서 2,5,8 이렇게 바꿔서 겜을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 그중 한명이 걸리면 그한명이 속한 조에서 우정게임을 하면서 마시는 형식이었다. 결국 마지막 사람이 피를 보는게 보나마나 였다. 게임을 시작했는데 역시 약하신 국장님이 걸리셔서 2조가 대부분의 맥주를 드셨다. 2조는 힘들게 그렇게 맥주를 드셨고 맥주를 많이 드시다 보니 국장님 더 잘 걸리신다. 우리조도 한번 걸렸었는데...재미를 원하는 다수를 위해 나는 혀만 담궜고 술을 못하는 길주와 영주가 조금 많이 마셨다. 먹고나니 얘들이 너무 힘들어 보이길래 너무 미안한 나머지 빨리 걸리면 내가 마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우리조가 걸렸고 그것도 내가 처음 마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먹을까 말까 재미를 보다가 내가 반넘게 마셨다. 맥주도 마시고 싶을 뿐만아니라 너무 미안한 나머지 많이 마셨다. 그래서 맘이 편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미지 게임을 했는데 박진감이 넘쳤다. 이건 걸린 사람만 먹기로 했다. 초반에는 술많이 안마신 인물들이 자주 걸렸는데 다음으로 얼마안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국에서 러브스토리를 만들려는 두 사람을 위해 게임을 그쪽으로 몰아갔다. 결국 그 둘은 2단계로 러브샷을 주구장창 마셨다는....둘다 잘됬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마시니 취기가 오른다. 원없이 마치고 뒷정리를 했다. 뒤이어 은결이가 아쉬운지 좀 더 놀자고 했다...그래서 동훈이랑 나랑 기정형이랑 은결이, 주현이랑 함께 술은 뒤로 하고 카드게임을 하며 즐겼다. 훌라를 했는데 은근 재밌었다. 벌칙은 인디안 밥으로 시원하게 안마를 해주었다. 카드게임을 끝내고 이제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러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나 아쉬운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8일째....


마지막 중국에서의 아침이다. 차를 타고 이동했다. 다음 행선지는 남산목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말을 탄다. 별 그렇게 감흥이 없지만 왜냐하면 그냥 말만 구경하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은 예전에도 많이 봐왔던 거라서 감흥이 없다고 했다. 아무튼 이동하고 있다. 이동하는 중에 풍력 발전기들이 보였다. 한국에 있던 풍력발전소와는 다르게 엄청난 규모와 한국에서는 높은 고지에 있었으나 여기는 일반 평지에도 바람이 많이 부는지 평지에 이렇게 많은 프로펠러 같이 생긴 풍력발전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주 파란 하늘에 하얀 풍력 발전기는 뭔가 깨끗한 이미지와 뭔가 매치가 되는 느낌을 연상시켰다. 중간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내렸다. 여기서 남아있던 거의 대부분의 과일을 해치워 버렸다. 차를 타는 도중 문제를 내서 제일 못 맞춘 조가 과일을 해치우는 게임을 했는데 단연 3조가 꼴찌해 버렸다. 그것도 다른 조 대답하는 타임에 동훈이랑 내가 성급히 대답하는 바람에 꼴찌가 되어 버렸다. 속도 안좋은 나에겐 엄청난 큰 벌칙이었다. 그치만 조용히 묻어가니 아무도 먹어라고 강요안한다. 살았다. 화장실도 갔고 풍력발전기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화보사진 몇장을 찍었다. 거의 남산 목장에 도착한 것 같다. 독수리의 모형도 보였고 말을 탄 무사의 동상도 보였다. 도착하니 온갖 말이 즐비했다. 가이드형이 백마 타는 이에게 보너스 점수를 준단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암튼 뭔가 특별해보이는 백마를 타고 싶었다. 마부들의 바쁜 움직임이 보였다. 말들이 싸놓은 변들이 너부러져있었다. 모두들 밟을까 조심히 움직였다. 근데 이후 가이드형한테 물어보니 이 말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아싸!! 기대에 부풀렀다.태어나서 말은 또 처음 타보는데 엄청 기대됬다. 모두들 자기 말을 골랐고 올라 탔다. 나또한 마부가 정해준 말을 탔는데 작대기로 때리거나 발로 말을 차면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줄을 당기면 멈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하고 당연히 같이 갈줄 알았는데 마부 사라진다. 허걱.!!이런 나혼자 말을 타고 어찌 간단 말인가!!하지만 속으로는 기뻣다. 맘껏 달릴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저기 광야를 말리는 마부처럼 질주를 느끼고 싶었다. 처음에는 발로 차니 가긴가는데 속도감이 너무 없어서 빨리 달리고 싶은데 빨리 가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노랑풍선 아주머니의 조언으로 작대기로 엉덩이를 세게 때렸더니 달그닥 달그닥.....속도가 점점 올라간다. 이거 뭐 경주게임하는 기분이다. 칠수록 빨리 달리는게 기분 좋았고 내말 잘 듣는 말이 기특해보였다. 내말은 약간 백마와 갈색말이 섞인 종으로 똥개가 아닌 똥말 틱나는 그런 잡종인 듯 했다. 아무튼 내말 잘들으니 열말 안부럽다. 그래서 앞질러간 나의 팀원들을 가로질러 광야를 내달렸다. 중간에 반환점인 것 같은 곳에서 멈췄다. 모두들 마부들이 사진도 찍어 주고 하는데 내 마부는 나 버리고 쉬로 간 듯 하다. 분명 자기 말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자기 말을 내버려두고 갈일이 없을 터....나의 잡종 말은 배가 고픈 듯....수풀을 열심히 뜯어 먹는다. 기특해서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나도 다른 마부에게 부탁해서 사진 찍어 달라고 했다. 애같은 마부에게 부탁했더만 이거뭐 왜 날 시켜 하는 시선으로 카메라를 받아든다. 내말이 자꾸 수풀을 씹어 대길래 내가 고삐를 잡으니 몇 번 거부하고는 계속 식사를 즐긴다. 그래서 마부가 답답한지 소리를 치며 몸을 한번 치니 말이 말을 잘듣는다. 그래서 몇장 찍고는 시에시에로 감사함을 전달했다. 다시 나는 작대기로 치며 광야를 달렸다. 모두 마부가 뒤에 타서 마지막의 질주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나 혼자 말을 타고 갔는데 이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가 날뛴다. 발걸이가 빠져서 진짜 위험했다.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다. 마지막 코스에서 우리말은 미친 듯이 질주했고 가이드형이 칭찬할 정도 였다. 한빛이 잘타네 말타봤어??아니요!! 니 말이 말을 잘듣네 그런다...나도 동의한다. 이렇게 내말을 이해해주는 말은 처음 타봤지만 처음인 듯 하다. 도착해도 마부가 없길래 그냥 내려버렸다. 있다가 줄줄이 팀원들이 도착했고 말탄 소감을 나누며 담소를 즐겼다. 그 때 저 멀리서 말 한 마리가 오토바이에 매단 식량 자루를 뜯어 버려 식량자루에 있던 곡물들이 모두 쏟겨져 나왔다. 뒤에 있던 마부가 화가나서(어려보였음) 채찍으로 말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려 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깜짝 놀랐다. 말이 한 대 맞고는 다시 맞기 싫어서 엉덩이를 보인다. 그러자 마부는 아직 분이 안풀렸는지 또 때릴려고 얼굴쪽으로 다가가자 말은 등을 보이며 도망을 간다. 참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저렇나 싶다. 가만보니 저말 내가 탄 말 같다. 백마도 아니가 잡종같은 그런 말이었다. 저렇게 날뛰는데 주인은 어디갔을까 의문이다. 참으로 주인 잘못 만난 말이다. 뒤이어 아주 어린 소녀애가 자기말을 끌며 온다. 덩치에 안어울리는 그런 말을 자기가 끌고 있다. 와우!!정말 조기교육의 산실인 듯...엄청 노련해 보이고 커서는 마부계의 최고가 되어 있지 않을까? 가까이서 보니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행복해 보였다. 햇빛에 그슬려 많이 타긴했지만 순수함은 잊지 않은 듯 하다. 우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어대자 가이드형이 그만 찍으라고 한다. 그래서 얘한테 팁으로 주라고 한다. 그래서 단돈 2원을 주니 소녀 더욱 더 웃음꽃이 핀다. 막간으로 내가 사진 한방을 찍었다. 그러니 현철이형 하는말 2원주고 뽕을 뽑네 그런다.. 남산목장을 나와서 다음으로 차로 이동중 내려서 몽고족 빠야 비스무리한 그런 천막집으로 갔다. 아주 인상좋으신 할아버지(?)같은 분이 나오셔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웃음이 많아서 그런지 얼굴주위에 주름살이 많다. 듣기로는 가축을 키우며 살고 부자라고 한다. 그런데 배움의 길이 적어서 많이 배우지는 못한다고 했다. 학교도 많지 않은 지역이라 했다. 안천막집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화려한 내부의 모습에 놀랐다. 보기보다 화려한 집이었고 천장이 뚫려있어서 밝은 햇살이 잘 들어 왔다. 모두들 모자 하나씩 걸치고는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전통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그 주인께서 우리들에게 우유를 대접해 주셨다. 따뜻하고 고소한 우유를 마시니 속이 든든했고 따뜻해졌다. 나와서 하미과와 수박을 나눠 먹었다. 할아버지(?)께서도 잘 드셨다. 막간으로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동의를 구하니 용케 응해주신다.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환한 미소와 함께 서있는 할아버지와 나는 꼭 손자와 할아버지 사진같이 정이 느껴졌고 따뜻해보였다. 그 할아버지도 자기 사진이 궁금했던지 사진기를 보여달라고 하신다. 사진을 보더니 함박웃음이 핀다. 자기모습이 부끄러우신지 한참을 웃으신다.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신청자가 많아서 바로 나는 나가 떨어졌다. 여자애들도 같이 찍자고 부탁해서 찍었는데 할아버지 무척 좋아하신다. 옆으로는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처음 갈대밭인줄 알고 갔다가 키가 무릎 밑으로 오길래 아닌가 싶더라. 할아버지와의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 하는데 할아버지 사람이 많이 그러워셨는지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떠나는 순간에도 손을 흔들어 주시며 잘가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잘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워할 법도 해보였고....뭔가 함박웃음뒤에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다음으로 식사지로 이동했다. 전에 갔었던 아랑도라는 한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된장국 대신 김치찌개가 나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식이 김치찌개라고 했던가??바로 밥 2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대패삼겹살도 여전히 나왔고 밑반찬들도 맛있었다. 그치만 나의 속은 천둥 번개를 치고 있었다. 쿠르르 쿡 쿠르르 쿡.....계속 1분에 한번씩 배알람이 울렸다.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처음에 갔을때는 휴지가 없어 다시 왔다가 다시 가니 다른 사람 볼일 보고 있어서 돌아왔다가 결국 종업원에게 휴지를 채워달라고 부탁해서 휴지를 받고 시원하게 봐버렸다. 다 해치우고 나오니 여자애들 이닦더라!! 얼마나 민망하던지 후딱 손씻고 나왔다. 다시 돌아와서 한식을 즐겼다. 남아있는 삼겹살을 입에 쑤셔놓고 음미하며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를 닦고 다음 행선지인 홍산공원으로 이동했다. 들어가니 규모가 큰 공원의 자태가 나왔다. 공원인 만큼 가족끼리 놀러오기 좋아보였고 어린애들이 해맑게 놀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꽃밭이 우리의 정신을 뺏어버릴만큼 아름다웠다. 공원이 특이하게도 산을 등산하는 기분처럼 올라가면서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주위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폭포수를 재현한 그런 인공 폭포수도 보였다. 무더운 날씨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우리 팀원들이 올라가던중 스위스에 오신 귀한 손님을 보았다. 반갑게 영어로 인사하니 반갑게 인사해준다. 중국어만 듣다가 영어를 들으니 얼마나 반갑던지...은결이는 노홍철 닮았다고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노홍철과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도중 잘못 전달한게 있었는데 우리가 학생이고 선생님을 따라 견학온 그런 상황을 전달하게 되었다. 잘못된 의사전달을 고치고 싶었으나 아무리 영어라 해도 언어적 장벽은 존재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리고는 사진 몇장을 찍었다. 노홍철이라는 별명다운 포즈로 사진을 장식해 주시더라. 홍산공원에서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어서 빨리빨리 움직여야했다. 홍산공원에서의 풍경을 하나도 놓치기 싫은 마음에서였다. 홍산공원의 대부분이 사진찍기 좋은 그런 풍경이었고...가면 갈수록 기대감을 더욱 더 불러 일으키는 그런 곳이었다. 놀이기구도 꽤나 있었는데 폭포수 밑으로 애기들이 놀수 있는 손으로 젓는 보트도 귀여워 보였다. 더 올라가자 홍산공원 밖으로는 시내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나 도시화 되어있었다. 홍산공원의 아름다움과 도시의 도시적이미지는 대조적이었다. 여기는 따뜻한 반면 바깥은 분주했고 차가워 보였다. 무지개 앞에서 한컷을 남겼다. 우리 앞으로 재밌는 광경이 펼쳐 졌는데 중국 아주머니 분들이 단체로 줄넘기를 하고 계셨다. 저 기계화된 동작은 오래 연습한 결과의 동작인 듯 혼연일체 되었고 가볍게 줄을 넘으셨다. 우리도 질수 없어 대결을 신청했다. 응해 주셨는데 우리 팀원 모두 들어가서 줄넘기를 했다. 줄넘기를 했는데 이거원 이렇게 호흡이 안맞나? 몇 번 넘기고는 모두들 줄에 걸린다. 나도 큰 한몫 했었지만은...모두들 줄넘기의 흥미에 푹빠져 동심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맛보는 순수함이었다. 결국 우리 아르미 1기의 마스코트 동훈이와 현철형의 줄넘기 시범이 있었다. 노래에 맞춰 줄넘기를 하는데 뒤돌아 보고 마주보고 땅을 짚고 아까전 중국인 어머니들의 차원을 넘는 실력을 선보였다. 중국인들도 우리 팀원들도 하나같이 감탄했고 박수를 쳤다. 뭔가 뿌듯함 이 자긍심은 뭔지....!!참으로 한번더 우리 아르미 1기를 부각시켜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시간 관계상 모두 하산하게 되었다. 하산 하던중 은결이가 한 놀이기구에 꽂혀서 몹시 타고 싶어 하더라. 나도 타고 싶어 같이 타게 되었다. 발 페달을 밟으며 움직이는 기구였는데 재밌어 보였다. 하지만 이거 원 속도감도 없고 루즈한게 별 재미가 없더라!! 한편 주현이는 타다가 안경을 놓치는 바람에 기구 타는 값 10원에 + 안경값까지 손해를 보는 아픔을 맛보았다. 내리고 다시 하산 하던중 더 재밌어 보이는 놀이기구를 발견했다. 동계올림픽 종목인 봅슬레이를 보는 듯 했다. 인체 공학적 판대기에 레버가 있었는데 앞으로 밀면 속도가 빨라지고 뒤로 당기면 브레이크 잡히는 그런 원리였다. 단돈 20원을 주고는 다시 은결이와 합심하여 올라탔다. 제발 20원 제값하기를 빌며 출발했다. 이거 원 장난이 아니다. 아까 전 놀이기구에 비하면 속도감이나 스릴감이 엄청나다. 속도만 안줄이면 100킬로 밟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기 싫어서 까불다가 급커브에 튕겨 난간에 살을 부대꼈다. 살이 뜯겨져 나가고 타는 그런 느낌이었다. 멀쩡했지만 살이 푸석푸석해졌고 피멍 든 것 같이 다쳤다. 또 한번 상처를 남기고 간다. 다행히도 죽지 않아서 살아서 다행이었다. 급커드에 튕기는 바람에 속도가 현저히 줄어서 내 손으로 밀면서 나아갔다. 곧 출발점으로 올라왔고 나의 영광의 상처를 알렸다. 모두들 또 한번 걱정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바보같이 다치긴 했지만 주목받는 느낌 이거 싫지만은 않다.!!계장님 까지 나에게 이번 여행와서 큰 고생 하고 간다고 괜찮냐고 걱정해주시니 눈물 날것 같다. 그렇게 놀이기구를 타고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고는 홍산공원과 바이바이를 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바자르 시장이었다. 차타러 가는데 기사아저씨가 없다. 가만 짐칸이 열리더만 환한미소와 함께 나오는 기사님을 볼수 있었다. 모두들 불쌍하기도 했고 재밌는 상황에 배꼽잡아 웃었고 어리둥절한 기사님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차로 이동했고 바자르 시장이 눈앞에 있다. 시장이라 해서 조그만할 줄 알았는데 규모가 엄청컸다. 우리가 봤던 회왕릉에서의 그런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근데 반가운 영어 글씨가 보인다. 이슬람 사원같은 건물에 떡하니 KFC라는 가게가 있질 않은가??가까이서 보니 진짜KFC였다. 꼭 가야겠다는 맹세를 하고는 시장길에 나섰다. 여기서도 작은 미션을 수행했다. 한국제품의 식품을 10원에 가까이 사오라는 것이었다. 우리조는 단연 꼴찌라서 모두 자포자기 한 상태였고 쇼핑만을 즐겼다. 1조와 2조는 열심히 오리온과자를 찾아 다녔다. 오리온 제품이 특히 많았는데 고래밥이랑 버섯모양 과자가 보였다. 우리나라가 과자업계가 여기까지 진출한걸 보고 놀랐다. 쇼핑을 하러 따라 다녔는데 나는 애들한테 관심이 많아서 보는 애들 마다 족족 손을 흔들어 댔고 반응을 보러 기다렸다. 처음 애들은 내가 참 신기한듯 쳐다 보았다. 얼굴도 다르고 말투도 현저히 다른 우리를 보니 신기한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한 소녀가 지나 가길래 손을 흔드니 활짝 웃는다. 나의 제스처에 반응해주니 기분이 좋아서 약심식스(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사진 찍어돌라고 요청했다. 기꺼이 응대 해주었고 부끄러운 듯 같이 쇼핑하던 엄마랑 가더라!! 식품 코너에서 심심하게 있다가 지루해져서 영주를 데리고 구경을 하러 가다가 영주랑 다시 찢어지고 1조에 기정이형이랑 은결이랑 주현이랑 현영이랑 모여서 개별적으로 바자르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단 식품 코너를 나와서 본격적인 바자르 시장의 여럿 물품을 사러 나왔다. 나오니 이때 까지 보았던 시장의 물건들은 모두 팔았고 가이드형의 조언인 여기 물건은 만지면 무조건 사야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조심히 다루면서 물건을 쇼핑했다. 전에 구경했던 물건들에 더해서 기타 같이 생긴 악기들, 그리고 찻잔들, 동물 털로 만든 털모자와 옷가지 및 온갖 물품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볼거리는 많았으나 살 것은 그닥 없었다. 쇼핑을 마치고 우리가 아까부터 가기로 마음먹었던 KFC로 갔다. 갔는데 이거 원 말이 안 통해서 전전긍긍하다가 한 점원이 와서는 영어를 쓴다. 영어는 어느정도 단어 사용만 하면 통해서 간단한 단어를 조합해서 주문을 했다. 콜라 하나와 아이스크림 4개를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을 정상적으로 받고 콜라를 받아 가던중 콜라를 엎질러 버렸다. 이런!!그토록 먹고 싶었던 콜라를 쏟아버렸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점원에게 우리가 실수로 쏟아버렸는데 리필되냐고 반 항의식으로 요청했지만 인상을 쓰더니 곤란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어서 아까 영어로 대화를 이끌어 갔던 점원이 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따지고 싶으나 별 할말이 없어서 아이스크림만 맛있게 먹고 나왔다. 나와서 시장이 하두 넓어서 다른쪽 방향으로 또 시장 구경을 하러 갔다. 가다가 우리 일행을 만났는데 모두들 두손 한가득 물건을 집어 온다. 현도는 낙타인형을, 그리고 나머지는 팔찌에 모자에 온갖 이 지역 민속품들을 사들고 간다. 모두들 전번에 시장보다는 싼맛에 쇼핑을 더 즐기는 듯 하다. 쇼핑하다가 KFC를 발견한 국장님이 우리 팀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쏜단다. 그래서 모두들 기쁨에 환호성을 지른다. 쇼핑을 마치고 모두들 KFC에 자리잡아 콜라 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어들고 맛있게 먹었다. 갈증해소엔 콜라가 최고!!!속이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콜라한잔을 벌컥 마셨다. 이후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모두들 아이스크림과 콜라로 배를 채워서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밥이 줄지를 않고 대부분의 반찬이 남아있었다. 은결이는 배탈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나는 모두가 참치와 고추장을 섭취할 때 나는 마지막까지 현지식을 고집했다. 모두들 그냥 포기하고 먹어라는데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몸부림을 쳐댔다. 식사하던중 국장님이 하시는말이 1시 비행기라서 시간이 많이 남는대서 아까전 갔던 바자르 시장에 1시간 가량 더 있다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이동했는데...어두워서 바자르 시장구경은 물건너 가고 그냥 맥도날드에서 한가지씩 먹고 싶은 음료를 선택해 조금 쉬다 가기로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 올려놓은 마끼아또 같은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배가 그때 폭발직전이어서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갔다 왔다. 배가 영 안받아서 내가 거의 먹지 않은 커피를 남에게 양도하고는 얘기를 나눴다. 오늘은 우루무치의 마지막 밤이자 여행의 끝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이미 집어 치웠고 이미 낭만에 취해있던 우리 실크로더들은 많이 아쉬웠지만 다들 내색 하지는 않는다. 이제 까지만 해도 꼭필요했지만 공기같은 존재였던 가이드형이 더욱 존재감을 부각시켰고 뭔가 엄청난 아쉬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철근이형은 우리를 맞이할 때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왔다. 다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오신것이다. 이제 중국에서 나올 출구를 향해...앵콜의 미학은 찾고 싶어도 찾을수 없었다. 다시는 못올 그런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 차례다. 차를 이동하면서 철근의 형은 표정은 그렇게 많던 웃음기, 장난끼는 볼수 없었고 아쉬움에 항상 그래왔다는 듯이 슬퍼보였다. 모두들 마지막이라는 보람감보다는 아쉬움에 침울해 있다. 철근이형은 6년간 하고 이제 이 일을 떼어내려고 한단다. 항상 정이 들려고 하면 떠나 보내야하는 그런 일을 도저히 못참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손님들보다 우리가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약간 눈물을 보일려는 듯 했다. 모두들 철근이형을 응원했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위로를 했다. 철근이형은 한번 한국에 내려오면 꼭 보자고...내가 모신 손님들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끝까지 모신다는 얘기에 약간 안타까웠다. 곧 공항에 다가서자 철근이형은 못다한 여행의 설명을 해주고는 끝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공항에 와서 비자 처리를 해주고 모두와 한명한명씩 악수를 청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모두 철근이형을 보내고는 공항 출국 심사대를 거쳤다. 모두 여권확인및 절차를 처리하고 1시간 가량 시간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들 공항내 면세점을 이용했다. 못산 술을 3병이나 구입했고 맛간으로 여친선물용으로 초콜릿을 사게 되었다. 다음에 선글라스 가게에 가서는 멋쩍게 선글라스를 여러 가지 대본다. 이후 대한민국 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꿈만 같던 여행은 이렇게 끝나고 남는건 사진과 친구들뿐...행복한 여행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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